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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들녘에 내리는 맑은 비는 우수를 빚어내고
관련이슈 : 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2009072900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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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은 아늑하다. 도회지에서 쫓겨 살 때는 까맣게 잊었다가도 정작 그곳에 내려가면 누군가 오래 기다리다 깊이 안아주는 것 같다. 그 들녘을 굽어보는 정토산의 치맛자락 말기, 전북 정읍시 정우면 산북리에 박형준(43) 시인의 옛집이 있다. 산 중턱 정토사에서 내려다본 시인의 마을너머로 호남선 열차들이 들녘을 바쁘게 오르내린다. 요사채에서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리다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진다. 절집과 피아노와 들녘,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서로 스며드는 분위기다.
북쪽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데 남쪽 들녘은 어둑할 뿐 빗방울이 보이지 않는다.
◇전북 정읍시 정우면 정토사에서 내려다본 박형준 시인의 고향 마을과 들녘. 시인의 어린 친구들을 일찍이 가출로 내몰았던 호남선 철길이 마을을 스치고 들녘을 가로질러 아득히 사라진다.
‘별들이 뜨고 지는 계절’로 떠오르는 들녘의 삶은 낭만적이다. 하지만 이런 기억은 멀리 떨어진 세월이어서 아름답게 채색된 것일 뿐 정작 시인은 그 시절, 그 들녘을 떠나 ‘출세’해서 절에서 내려다보이는 넓은 땅덩이를 다 사고 싶었다. 그는 정토산을 돌아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자리 잡은 정우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다. 그 학교 5학년 때 들녘을 떠났다. 그가 떠날 때, 선생님과 아이들이 교문 밖까지 따라나와 배웅했다. 시인은 지금도 그때를 뿌듯했던 생의 빛나는 순간으로 떠올린다.
그는 집 부근 공동묘지 곁에 있는 밭뙈기 몇 평과 멀리 김제 죽산 쪽에 논을 몇 마지기 지니고 있던 집안의 2남6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른바 ‘옴팍집’이라고 시인이 많은 시에서 기억하는 단칸 초가집에서 할머니까지 모시고 그들은 살았다. 어김없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가난이라는 단어를,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다. 그곳을 떠난 뒤에서야, 서울역에서 내려 인천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예감하고 수문통 거리에서 드디어 ‘가난’을 발견했다.
“석유를 먹고 온몸에 수포가 잡혔다./ 옴팍집에 살던 때였다./ 아버지 등에 업혀 캄캄한/ 빈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읍내의 병원은 멀어,/ 겨울바람이 수수깡 속처럼 울었다./ 들판의 어디쯤에서였을까,/ 아버지는 나를 둥근 돌 위에 얹어놓고/ 목의 땀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그 풍경을/ 실제라고 믿고 살았다./ 삶이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들판에 솟아 있는 흰 돌을/ 빈 터처럼 간직하며 견뎠다./ 마흔을 앞에 두고 나는 이제 그것이,/ 내 환각이 만들어낸 도피처라는 것을 안다./ 달빛에 바쳐진 아이라고,/ 끝없는 들판에서 나는 아버지를 이야기 속에 가둬/ 내 설화를 창조하였다./ 호롱불에 위험하게 흔들리던/ 옴팍집 흙벽에는 석유처럼 家系가/ 속절없이 타올랐다./ 지평을 향한 生이 만든/ 겨울밤의 환각.”(‘地平’ 전문)
호남선을 타고 먼저 올라간 형과 누나에게 가겠다고 부모를 졸라 일찌감치 고향을 떠났던 시인. 그가 당도한 곳은 비가 오면 하수구로 바닷물이 역류하는 인천의 수문통 거리였다. 서울역에 내려 대우빌딩의 빛나는 유리창들을 올려다보며 하냥 부러웠던 소년은 저런 유리창이 달린 집을 짓고 살리라 다짐하다가 전철이 역곡을 지나 고향보다 더 초라해 보이는 시골 철길을 달려 내려갈 때 기실 절망해 버렸다.
◇고향 배롱나무 곁에 선 박형준 시인. 귀기 어린 목백일홍의 붉은 빛깔처럼 시인이 들녘에서 만났던 죽음은 무섭지만 아름다웠다.
배롱나무 옆 철길 너머에 대궐 같은 기와집이 있었다고 했다. 읍내에서 이불가게를 운영하는 부잣집 남정네가 오토바이를 타고 그 기와집 쪽으로 철길을 건너다가 기차에 치여 죽었는데, 나중에 무당이 굿을 하면서 죽은 남자 대신 말하기를, 철길 저쪽에서 기차가 상여처럼 느리게 다가오는데 그 꽃상여 위에 예쁜 여인네가 걸터앉아 자꾸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더란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죽음은 무서우면서도 아름다웠다.
배롱나무 곁에 내려가 포즈를 취하는 시인이 파인더 속에서 환하게 웃는다. 웃지만, 쉬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늘이 그의 얼굴에 깊은 주름살로 음각돼 있다. 시인은 고향 ‘정우면’의 ‘정우’는 우물 井 자에 비 雨 자를 쓴다고 일러주면서, 우물에 비가 새는 정우에서 올라왔는데 인천에서는 하수구로 바닷물이 올라오더라고, 존재의 바탕색 ‘정우’에 대해 우울하게 언급했다.
“한달에 한번 시골에서 올라와/ 밀린 빨래와 밥을 해주고/ 시골 밭 뒤 공동묘지 앞에 서 있는 아그배나무처럼/ 울고 있는 여인./ 어머니가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가슴을 찢어라 그래야 네 삶이 보인다,고/ 올라올 때마다 일제시대 언문체로 편지를 써놓고 가는/ 가난한 여인, 새벽 세시에 아들은/ 혼자 화투패를 쥐고 내려다보는 것이다.”(‘바닥에 어머니가 주무신다’ 부분)
산문집 ‘저녁의 무늬’에서 “젊은 시절 심장병을 다스리느라고 소다가루 아홉 말을 먹었지만 지금도 울화가 치밀면 가슴에 울울짐, 울음이 연기처럼 나는 병을 앓는 어머니”라고 썼던 그 어머니는 아들 집에 올라왔다 내려갈 때면 부엌에 언문 편지를 써놓곤 했다. “형준아 어머니가 너 잠자는데 깨수업서 그양 간다 밥잘 먹어라 건강이 솟애내고 힘이 잇다”로 이어지는 길고 긴 글들을 모아놓으니 시집 한 권 분량은 너끈하다.
인천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그는 일찌감치 좌절했다. 운동부 아이들과 뒤에서 성적을 다투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담배를 피웠고, 고등학교 때는 외진 문예반 교실에 술을 감춰 놓고 쉬는 시간에 홀로 마셨다. 보들레르가 좋았다. 우아하게 산책하면서 시를 쓰는 분위기가, 수문통의 가난을 잠시 덮어주었다. 시를 쓰면 마취되는 기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서도 시를 쓴다고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막내 아들 곁에서 어머니가 고구마순을 다듬으며 잘사는 친척 얘기를 늘어놓았다. 애써 외면하다가 무심코 어머니의 잔소리를 여백에 받아 적은 게,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뽑혔다.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가구의 힘’ 부분)
배롱나무 밭에서 나와 신태인읍으로 가는 들판 길로 나아간다. 들녘의 속살을 헤집고 흐르는 동진강 위로 철교가 길게 지나간다. 그 철교 위를 걷던 아버지가 기차를 피해 강으로 뛰어들기도 했다고 시인은 말했다. 바로 마을 곁으로 호남선 기차가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곳이어서, 마을 아이들은 일찍이 가출을 하곤 했다. 늘 달려가고 달려오는 철길가에선, 아무도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멀리 달려간 곳의 끝에 자리 잡고 있을 세상에 대한 그리움은 가출의 숙명을 배태할 수밖에 없었다.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도 ‘출세’에 속하는가. 시인은 쑥스러워 선듯 답을 하지 못하지만, 그 고향마을은 시인으로 인하여 신문에 나는 것이니,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날 때 했던 다짐의 반은 이룬 셈이다. 한때 광주에 자리 잡은 대학에 매주 강사로 출강하면서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갈 때마다 고향 마을을 스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아직 ‘흰 날개’를 달지 못해 ‘고향에 와도 고향에 내리지 못하는 이의 이별’에 대해 썼다.
“일주일에 한번씩 고향을 스치는/ 이 길/ 명예는 흰 날개를 갖지 못한다// 아침 일찍 용산역에서 기차 타고/ 아이들 앞에서 서려 책에 밑줄 긋다가 잠이 든다/ 누가 흔들어 깨운 것 아닌데 눈이 떠지는 마음// 고향역 가로등 밑 거미줄에/ 안개가 짜놓은 구슬을 설핏 본 것 같다/ 汽笛이 고향집 담벼락을 울리는가// 월요일마다 고향을 아침저녁 차창으로 본다/ 흰 날개가 부질없이 와서 부서진다/ 고향에 와도 고향에 내리지 못하는 이의 이별”(‘이별’ 전문)
옛집 마을의 지명조차 우물에 비가 새는 ‘정우’(井雨)라고 시인은 기억했는데 나중 서울에 올라와 확인한 바로는 시인의 오래된 오해였다. 정읍시사(井邑市史)에는 분명히 정우(淨雨)라고 적혀 있었다. 맑을 淨, 비 雨라니, 맑은 비라니…. 정토의 산 아래 내리는 비가 우수를 빚어내고 맑은 기운이 그를 청명하게 감싸고 키워냈으니, 과연 이런 존재의 바탕색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빛을 소묘할 수 있었을까.
“누가/ 발자국 속에서/ 울고 있는가/ 물 위에/ 가볍게 뜬/ 소금쟁이가/ 만드는/ 파문 같은// 누가/ 하늘과 거의 뒤섞인/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가/ 편안하게 등을 굽힌 채/ 빛이 거룻배처럼 삭아버린/ 모습을 보고 있는가,/ 누가/ 고통의 미묘한/ 발자국 속에서/ 울다 가는가”(‘빛의 소묘’ 전문)
‘그는 그날 저녁 “궁극에는 언어를 무용하게 부리고 싶다”고 말했다’까지 쓰다가 시인의 오랜 오해를 서둘러 풀어주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 창밖으로 맑은 비가 들이친다.
jhoy@segye.com
■박형준 ●1966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하고 명지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구(家具)의 힘’이 당선되어 등단 ●24회 소월시문학상, 1회 꿈과시문학상, 15회 동서문학상 수상.
●시집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 ‘춤’, 산문집 ‘저녁의 무늬’‘아름다움에 허기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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