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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3 편] 나뭇잎 배/박홍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3. 3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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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 동시 - 제 3 편] 나뭇잎 배
박 홍 근
엄마 품 같은 연못에서 나뭇잎 배를 탄 아이
장석주·시인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 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 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1955〉)


 

▲ 일러스트 양혜원

한때 해군군악대에서 근무하던 박홍근(1919~2006)은 순연한 마음으로 〈나뭇잎 배〉를 썼다. 〈나뭇잎 배〉는 아직은 권태나 수면장애를 모르는 아이의 마음에 깃든 고요와 평화를 노래한다. 하늘과 땅, 해와 달, 잠과 깸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균형을 잡는다. 그 균형 위에서 고요와 평화는 모란꽃처럼 피어난다.

청산은 녹음이 짙고, 그 녹음이 얼비친 연못의 물은 맑다. 놀이에 푹 빠진 아이에게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은 그 자체로 우주이다. 아이의 영혼은 놀이를 통해서 우주와 접촉한다. 우주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그 안의 것들은 저마다 운동역학에 따라 움직인다. 푸른 달과 흰 구름이 움직이고, 바람은 살랑인다. 잔잔하던 물은 바람의 살랑임에 호응하여 작은 물이랑으로 밀려간다. 아이가 띄운 나뭇잎 배도 물이랑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떠간다.

박홍근은 함경북도 성진시(城津市)에서 태어났는데, 지금은 김책시로 지명이 바뀐 곳이다. 간도의 대성중학교를 나와 일본 고등음악학교를 거쳐 니혼대학 예술과를 중퇴했다. 박홍근은 성진시의 광명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46년 동시 〈고무총〉을 《새길신문》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6·25전쟁 때 월남하여 후반의 인생은 남쪽에서 꾸렸다.

밤은 벼락같이 오고, 밤하늘엔 "검은 담비 모피"(알렉산더 포프)가 깔린다. 그 위로 진주알갱이 같은 어린 별들이 쏟아지고, 주인을 잃은 나뭇잎 배는 연못 위에 떠 있다. 이 시에는 낮과 밤이 교차한다. 낮이 노동과 놀이의 시간이라면, 밤은 휴식과 잠과 꿈의 시간이다. 해가 져서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밥도 먹고 잠자리에 들어 엄마 곁에 누웠다. 그러나 나뭇잎 배가 아이의 눈앞에 삼삼하다. 아직 놀이의 달콤한 여운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놀이의 시간은 신성한 배움의 시간이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최소한도의 도덕을 배우고, 잘 익은 과일처럼 지각(知覺)을 키운다.

엄마 품은 따뜻한 우주이다. 아이는 손발이 크고 지각이 커지면 따뜻한 우주에서 차가운 우주로 떠난다. 나뭇잎 배는 아이의 꿈길에서 은하수를 따라 저 우주로 올라간다. 나뭇잎 배의 길과 아이가 나가야 할 길은 하나이다. 나뭇잎 배가 연못 위에서 평화로운 항해를 이어가듯 아이의 운명이라는 배도 저 우주 연못 위에서 순조로운 여행을 계속하리라. 나 또한 나뭇잎 배를 몰아 삶의 태초요 중심점인 엄마에게로, 그 엄마와 함께했던 향기로운 저 어린 시절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나뭇잎 배-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