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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강] 언어와의 사랑 / 강사/김영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6. 16.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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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언어와의 사랑 / 강사/김영천



오늘은 시를 쓰는데 언어를 왜 사랑해야하는가
간단히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예술엔 여러 장르가 있는데 특히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이 바로
시입니다. 도공이 한낱 흙으로 그 아름다운 도자기를 구워내듯
이 시인은 아무나 쓰는, 어디에나 있는 그 말들로
참으로 빛나는 시를 빚어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쓰면 좋은 시가 되는가를 알면
되겠지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시인은 언어를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언어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 이며 천생연분입니다.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노인들을 위한 퀴즈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한 노인 부부가 나와서 퀴즈를 풀었답니다.
이 때 사회자가 영감님에게 "천생연분"이란 카드를 주었습니다.
영감님이 설명을 하고 할머니가 맞추는 퀴즈인데
영감님이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이 것쯤이야 하고는

"할멈과 나 사이" 하니까
할멈이 생각도 할 필요도 없이 불쑥 "웬수" 하더랍니다.
방청석은 그야말로 폭소의 도가니가 되고
영감님은 안절부절하더니

"두 자 말고, 네 자, 네자"
하니까
할머니가 또 두 말 없이
"평생 웬수"하더랍니다.

우스개 소리 이지만
우리 시를 쓰는 사람들에겐 언어가 이렇듯 평생 원수가
되어서는 안되고 천생연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소원이
겠지요. 그러나 누구도 사람이 만든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쓰기엔 어렵습니다.
오히려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특히 좋은 경치를 보았거나,
아아, 이 건 시가 될 것 같아 하는 경험을 하였어도
막상 시를 쓸려하면 제대로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저도 어디 경치 좋은데 가면 주윗 분들이
즉석 시 하나 지어보라고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때마다 "아, 좋다" 이 것이 시요.
하고 웃고 말아버립니다.

천상병 시인의 <무명>이란 시를 한번 읽어봅시다.

뭐라고
말 할 수 없이
저녁 놀이 져 가는 것이다

그 시간과 밤을 보면서
나는 그 때
내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봄도 가고
어제도 오늘 이 순간도
빨가니 타서 아, 쓰러지는 놀빛.

저기 저 하늘을 깎아서
하루 빨리 내가
나의 無名을 적어야 할 까닭을,

나는 알려고 한다
나는 알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으로 유명하지요.
그의 시에는 어려운 말이 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말로서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이런 대시인도 노을이 지는 모습을 표현하지 못하고
"뭐라고/말 할 수 없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어를 사랑해야 합니다.
시에 적합한 최상의 말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말을 더욱 많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국어사전을 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말들이나
알면서도 쓰지 못하고 버려두는 말,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좋은 말들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런 말들을 일부러 찾거나, 다른 사람의 글에서
보면 꼭 적어놓는 습관을 들입시다.

사투리나 고어도 시에서는 아주 긴히 쓰이는 말입니다.
언어의 정부라고 불리는 서정주는 특히 구수한
전라도 방언을 아주 잘 구사하였지요.

야생화나 나무들, 저 많은 산새와 벌레들 이름까지도
많이 알아두거나 기록하는 습관을 들입시다.
꽃이름이 예뻐서 그 이름 자체가 시적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도 참 많지요.

여기 문학의 방에 있는 제 시중에 "눈부처"라는 순 한국말
이 있는데요. 이의 뜻은 눈동자에 비치는 사람의 형상을
두고 하는 말로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모습이 되겠
지요.
저는 처음에 이 단어를 알았을 때 너무너무 기뻤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이제부터라도 늘 쓰는 말을 버리지 마시고
자기의 가슴에, 머릿속에, 노트에, 메모장에
늘 외워두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시기로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시인의 좋은 시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 시를 택하시지 말고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시나, 많이 알려진 시
또 처음보는 시라도 쉬운 시부터 보시는 게 좋습니다.

여기 박용철님의 시 <떠나가는 배>를 조용히 소리내어
읽어보면서
오늘 강의는 이만 마칩니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쫒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헤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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