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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영환 시 창작 강의 (7)/시어의 폭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6. 2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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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시 창작 강의 (7)


시어의 폭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뜬다」는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상을 떠나서 날아오른다는 의미일 것이며, 또 하나는 저승으로 간다 즉 죽는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렇듯 뜬다는 것의 일상적인 의미인 전자에서 시인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일상어와는 달리 쓰이는 시적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행은 80년대의 시대상황에 접목되어 새들까지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알레고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에서 ‘새들도’에서 ‘새들이’나 ‘새들은’으로 하지 않고 ‘도’를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의 폭을 상징으로까지 끌어 올려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의 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운대 모래사장에 앉아서

   철썩이는 파도를 보았다

   파도는 어디선가

   물을 먹고 와서

   모래 위에 게워 놓고 슬그머니 내뺀다

   노래를 불러 주세요

   사랑의 노래를

                             독자의 시 <파도> 부분


이 글에서 일상어를 사용하여 시를 만들고 있지만 전혀 새로운 의미를 주지 못합니다. 그냥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의미에 충실할 따름입니다. 이런 글은 평범하고 그러기에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거나 낯선 체험을 경험하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 글을 끊어 읽지 말고 붙여 읽는다면 산문과 같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와 언어 사이에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간은 상상력에 의해 가늠되어 지고 상상력은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때 생성되는 것입니다.


   창문을 여시고 그대는

   내 가슴에 손을 넣어

   물을 퍼내셨습니다

   도망하고 싶어 집을 나서면

   그대는 어느 결에 슬며시 다가 와

   창문을 여시고

   내 가슴 속 물을 길어 가셨습니다


                           김혜순 시인의 <사랑에 관하여> 부분


이 작품에서 우리는 언어가 넓은 폭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창문’이라는 말의 의미에서 그것을 더욱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집에 붙은 현상적인 창문으로 그치지 않는 그것은 신비감을 느끼게 하면서 언어가 지닌 의미의 폭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작품에 사용된 ‘가슴’이나 ‘물’과 같은 말이 현상적인 가시권을 벗어나고 있다는데 이 작품을 읽는 재미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언어는 우리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어가 꼭 현실과 밀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시의 출발을 현실세계에서 잡고 있느냐 그렇지 않고 정신의 영역에서 출발하고 있느냐의 관건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는 거기에 씌여진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볼 때 시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일상생활에서 즐겨 사용하는 언어이든,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언어이든 즉 시인이 취사 선별한 언어를 쓰고 있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 볼 일입니다. 이 말은 시인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미지가 바로 시인 자신의 내부와 연결된 세계를 주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는가 아니면 현실세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자신의 의미망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가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잊었노라/ 탯줄에 싸여

   샛노란 강줄기가/ 껍질 채 말라 얼고

   어눌한 시대/ 검정 뿔테 안경 쓴

   시인 아저씨/ 수염 거뭇거뭇 돋아 난

   코 크고 키가 장대 같아/ 밭고랑 두엄 내며

   알이 꽤 굵어진 감자꽃 쳐다본다/ 민둥산,


   산허리에/ 허옇게 물방울의 띠를 두른,

   으랴차차/ 씨름이나 하듯/ 안개를 밀어낸다.

   

                        독자의 시 <황토 한삽 떠내며> 전문


이 시는 1) 탯줄에 싸인 강줄기가 말라 얼고, 2) 시인 아저씨가 두엄 내며 감자꽃을 쳐다본다 3) 안개를 밀어 낸다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이 시는 시어 측면에서 몇 가지 불균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선 첫 부분의 ‘어제는 잊었노라’에 대한 문학적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선언적으로 말해야 했는지 이유가 불분명하고, 두 번째 시인을 수식하는 말로서 ‘검정 뿔테 안경 쓴’‘수염 거뭇거뭇 돋아난’‘코 크고 키가 장대 같아’로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제시함으로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알이 꽤 굵어진 감자꽃’이라는 표현은 굵어진과 감자꽃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이는 시적 표현을 빈 억지스러움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를 이렇게 고친다면 조금 더 선명한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을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개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눌한 시대/ 어제는 잊었노라

   샛노란 강줄기가/ 탯줄에 싸여

   껍질 채 말라 얼어붙고/

   수염 거뭇거뭇 돋아난/ 시인 아저씨

   장대 같은 키로 밭고랑에 두엄 내며

   검정 뿔테 안경 너머로/ 감자꽃을 피운다

   황토 한 삽 떠내며/ 민둥산 산허리에

   허옇게 물방울 띠를 두른/ 안개를 밀어낸다


물론 작자가 지닌 의도가 그대로 반영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적 표현 때문에 언어가 가진 기본적인 논리성까지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전혀 전달되지 않는 불투명한 언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어에서도 기존의 언어체계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상상력이든 상징적이든 언어는 어떤 의미를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촛점 부서진 볼록렌즈를 끼우고

  선명한 것은 위험하다 위험하다

  는 논리를 필름에 담고

  애당초 어그러진 핀트의 셔터를

  누른다 날아가는 갈매기

  갈매기는 산에까지 오지 않는다


  현상되는 투명한 사건

  빛이 들어갔을까요

  물이 들어갔을까요 눈에

  티끌이 묻어 나온다 렌즈에

  투명한 것은 선명한 것이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망쳐 놓는다

  빛이 들어갔어

  그늘이 졌어 그것은

  해일이 분명해 해일을 본적이 있어

  애당초 어그러진 핀트가 망가진다


                                  강영환의 <황씨의 카메라> 부분


언어가 가진 의미의 폭은 현실적인 의미를 어느 정도 뛰어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실과 1 : 1 의 구조로는 시의 모습이라고 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늘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하거나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해 줄 때 시적 표현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기대 합니다.

출처 : 너에게 편지를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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