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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주머니를 어머니로 읽는다/박남희
어머니를 뒤지니 동전 몇 개가 나온다
오래된 먼지도 나오고
시간을 측량할 수 없는 체온의 흔적과
오래 씹다가 다시 싸둔
눅눅한 껌도 나온다
어쩌다, 오래 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어머니를 뒤지면
달도 나오고 별도 나온다
옛날이야기가 줄줄이 끌려나온다
심심할 때 어머니를 훌러덩 뒤집어보면
온갖 잡동사니 사랑을 한꺼번에 다 토해낸다
뒤집힌 어머니의 안 쪽이 뜯어져
저녁 햇빛에
너덜너덜 환하게 웃고있다
<다층>2004년 봄호
버스를 기다리며/정희성
주머니를 뒤지니 동전이 나온다
100원을 뒤집으니 세종대왕이 나오고
50원을 뒤집으니 벼이삭이 나온다
퇴근길 버스 정거장에서 동전을 뒤집으며
앞에 선 여자 궁둥이도 훔쳐 보며
동전밖에 없어 갈 곳은 없고
갈 곳 없어 아득하여라
조정에선 이 좋은 날 무엇을 할까
나으리들은 배포가 커서 끄떡도 않는데
신문에 나온 여공의 죽음을 보고
동전밖에 없는 제 자신도 잊은 채
울먹이는 나는 얼마나 작으냐
말 한마디 큰 소리로 못하고
땡볕에서 동전이나 뒤집으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다보탑 뒤집으니 10원이 나온다
주머니를 뒤집으면 먼지가 나오고
먼지를 뒤집으면 뭐가 나올까
생각하며 땡볕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무엇이든 한 번 뒤집기만 하면
다른 것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
일없이 일없이 동전을 뒤집는다
- 시집『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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