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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제비 시 - 권혁웅/이가림/정성수/이홍섭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7. 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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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권혁웅

 

 

 

그날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먼저 가 닿았습니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한 세상 열어 보일 듯 했습니다
연한 세월을 흩어 날리는 파랑의 길을 따라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대는 흔들렸던가요
그 물결 무늬를 가슴에 새겨 두었던가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강물은 잠시 멈추어 제 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대 역시 그처럼 열리리라 생각한 걸까요
공연히 들떠서 그대 마음 쪽으로 철벅거렸지만
어째서 수심은 몸으로만 겪는 걸까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이 삶의 대안이 그대라 생각했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없는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너던 나의 물수제비,
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았지요
그 위로 세월이 흘렀구요
물결과 물결이 만나듯 우리는 흔들렸을 뿐입니다

 

  

-「황금나무 아래서」문학세계사. 2001  

 

 

 

물수제비 뜨는 날/이가림

 

      
내가 던진 돌멩이가
물 위를 담방담방 뛰어가다가
간 곳 없이 사라진다
측심기로 잴 수 없는
미지의 바닥에 돌멩이는 잠드는 것일까
잠시 일렁이던 파문도 자고
물 거울에 뜨는 산 그림자의
입 다문 얼굴,
나는 무감동한 고요를 깨뜨리기 위해
또 하나의 돌멩이를 멀리 팔매 친다
죽음에 배를 대고
팽팽한 찰라만을 디디고 가는
한줄기 생명의 퍼덕임을
어렴풋이 보았다
아이와 함께
물수제비 뜨는 날

 


-시집 『순간의 거울』(창비시선)

 

 

 

내가 뜨는 물수제비/정성수

 

 

비 내리는 호수 가에서
내가 뜨는 물수제비를 그대가 받았을 때
그대는 내 가슴에
사랑의 징표로
점점점, 말줄임표 하나 찍었습니다


물결이 물결에게 건너가고 건너오는 동안
호수가 제 몸을 열어주어
수심의 깊이를 알았습니다


어느 날, 삶의 의미를 걷어내면서
내가 뜨는 물수제비로 하여금
잠시 흔들렸을 뿐이라며 그대는
그대와 나 사이에
점점점, 마침표를 세 개씩이나 찍어놓고
물처럼 흘러갔습니다.


 
-시집「唱」 (청어, 2007)
2011-06-22 / 수요일, 오전 10시 28분

 

 

 

물수제비뜨는 날/이홍섭

 

 

때로 가슴에 파묻는 사람도 있어
그게 서러울 때면
강가에 나가 물수제비를 뜨지요


먼 당신은 파문도 없이 누워
내 설움을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지요
 

그러면 나도 어린아이처럼 약이 올라
있는 힘껏 몸을 수그리고
멀리, 참 멀리까지 물수제비를 떠요


물수제비 멀리 가는 날은
내 설움도 깊어만 가지요

   


-시집『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세계사, 2005)
-중알일보『시가 있는 아침』(2007년 3월 13일)
2011-07-09 / 토요일, 08시 5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