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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진명-보름달/정대호-보름달/박창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7. 3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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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전화

 

이진명

 

     
전화가 왔으면
전화가 왔으면
전화가 왔으면


명절인데 엄마는 전화도 못하나
거긴 전화도 없나
전화선 안 깔린 데가 요새 어디 있다고
무선전화 세상 된 지가 벌써 언젠데


유선이든 무선이든 전화 하나 성사 못 시키는
느려터진 보름달
둥글너부데데한 지지리 바보
얼굴 피부 하나만 허여멀건 반질해가지고
지 굴러가는 데 알기나 알까
잠실운동장의 몇백만 배 될 그런 운동장 암만 굴러도
아직 모르냐, 너, 거기 죽은 세상이란 걸


여기도 죽은 세상
거기도 죽은 세상
똑같이 죽은 세상
죽은 세상끼리 왜 통하지 않느냐


엄마는 그깟 전화 한번을 어떤 세월에 쓰려고 아끼나
할머니도 마찬가지
죽어 새 눈 떴는데
아직도 눈 어두워 숫자 버튼 하나 제대로 못 누르나


여기도 죽은 세상
거기도 죽은 세상
국번 없고 고유번호 없고
전화기 돌릴 손모가지가 없어
전화 못하긴 나도 마찬가지


오, 그렇지만 나는
빈다
빈다
빈다
아무 잘못 없는
바보 보름달에게 말도 안 되는 시비하며
죽어도 마음은 있어서 빈다


전화를
전화를
전화를


-시집 (세워진 사람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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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정대호

 


동쪽으로 걷는데
산 위에서 환히 웃으며 솟는 얼굴
내 어린 날 벼 베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얼굴
머릿수건을 벗어 치마의 먼지를 털며
골목으로 들어서는 환한 얼굴
온 들의 벼가 넘실대는 얼굴
한 해의 노동이 익어서 돌아오는 얼굴.


 

-시집『어둠의 축복』(시와에세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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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박창기

 


보름달도 달거리 한다
달마다 바다 속에서 걸어 나와서는
달거리 속 온기, 온 세상에 퍼 나른다
그 온기에 마음 데어도 좋아라
그 온기 허공을 건너가는 사이
이승의 마음들은 맑고 고요하여라
어찌하여 온기의 배경은 푸르고 푸르러
세상에 젊디젊은 사상을 전하는가

 

 


-계간『詩하늘』(2012,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