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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시 창작법 강의 23 - 은유의 유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8. 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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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지상 시 창작법 강의 23



은유의 유형



1.

시를 시적이게 만드는 요소 중에서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은유일 것이다. 은유는 시인이 가진 가장 창조적인 기술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시에 은유를 차용하지 않고 기술 되었다면 그것은 시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산문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시가 시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은유에 의해 시인이 가진 개성이 강하게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 독자 시를 살펴보면서 그 실체를 파악해 보자.


머리 위엔 은빛 금빛이/반짝반짝 비치고//

양 옆엔 크리스마스/트리가 우뚝 섰네//

96년을 붙잡으려/붙잡으려 하지만//

기어이 붙잡히지 않고/애만 태우네!//

올해도 만나자고 약속도하고/ 내년에도 만나자고//

한 손가락 꼭꼭 끼우며/밤눈을 밝힌다


위 시는 설명적이며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인 묘사에 의해 적어 놓았을 따름이다. 비유도 없고 은유도 차용되지 않아 산문을 토막 내어 늘어뜨린 것에 불과하다. 이 글이 가진 소재 자체가 워낙 평범하고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차별화에 어려움이 있다. 원작품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친다는 것에 많은 무리가 따른다. 물론 격조 면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은유를 파악하기 위해 이 글을 은유법을 차용하여 시적 모양새를 갖춰보기로 한다.


머리 위에 금별 은별이/사랑에 눈을 뜨고

내 가까운 곁에는/성탄의 나무 서있네

지난 해는 지나가고/내 곁에는 어둠 뿐이네

붙들어도 그것은/내 곁을 떠나고 말았네

내년을 기약하며/손가락 꼭 끼우고

밤눈을 밝히는 아쉬움에/눈이 밖을 채워 주네


고쳐 보았지만 원시가 가진 의미가 너무 소박하기에 더 이상 어떻게 원시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고 접근해 가기란 쉽지가 않다. 독자분들도 손을 마구 대어 나름대로 고쳐 보시기 바란다.


2.

은유가 동일성의 양식과 병치의 양식으로 구분될 때 휠라이트는 이들을 치환은유와 병치 은유로 바꾸어서 해석한다.

휠라이트는 먼저 치환은유를 <일상적 의미가 친화적인 비교를 토대로 다른 의미에 적용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면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했을 때 <낙엽=지폐>라는 치환은유의 형식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일상적으로 잘 알고 있는 낙엽을 독자들이 잘 알지 못한 폴란드 망명정부가 발행한 쓸모없는 지폐에 연결시킴으로서 두 사물간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시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일상적 의미가 비일상적 의미로 치환-바꾸기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女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항아리다


                          김춘수 <나의 하느님> 부분

 

위 시에서 하느님=비애, 하느님=살점, 하느님=놋쇠항아리로 하나의 의미(하느님)를 다양한 여러 의미로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이것을 혼합 은유라 한다. 반면에 하나의 의미를 한 가지 회의에 위탁하여 드러내는 단순 은유가 있다.

치환은유는 잘 알려진 것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의탁함으로써 잘 알려진 것의 의미를 낯설게하는 방법이다.


그녀는 첫눈 내리는 날의 가로등이다

초저녁 불이 마악 켜진

어스름녘에 소리없이 내리는 눈발에

발목까지 푹 빠져있는 영혼

영원으로 고개 숙이고 있다


                         독자의 시 <가로등> 부분


휠라이트는 치환은유에서 이색적인 유형이 있음을 들고 있다. 그 유형으로 공감각적 은유는 좀 더 특수한 양상으로 인간경험의 내적 감각의 현상에 호소하기도 한다. 토마스의 <초록 휴즈를 뚫고 가는 힘이>와 같은 시가 전형이라고 했다.


3.

은유에서 가장 신선하다할 수 있는 은유는 병치은유이다. 휠라이트는 이것을 <의미론적 전이가 신선한 방법으로 어떤 경험의 특수성을 통과함으로써 오직 병치에 의해서만 새로운 으미를 획득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상태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非對象音樂과 抽象繪畵가 추구하는 의미의 공간과 같은 것이다. 싸르트르에 의하면 시는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사물로서 언어를 특질로 한다는 것이다.

시에서 표현된 병치 은유의 가장 순수한 상태는 순수시, 비대상시, 무의미시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언어는 의미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특질이 있다. 그러므로 의미란 어떤 대상과 결합되어 존재한다. 곧 모방적 관점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휠라이트는 치환은유와 병치은유의 두 과정을 시적언어의 관계적 양상으로 파악하여 상대적으로 훌륭한 은유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치은유는 시 속에서 새롭게 고안된 배열, 곧 병치의 형식에 의해서 드러나는 어떤 다양한 특수성의 세계인식에 있는 것이다.

병치은유의 새로운 의미나 특수성을 파운드는 상호간에 현격히 멀리 떨어진 요소들의 병치를 통하여 확립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가장 단순하게 <존재>한다는 데 있다. 형태상의 특성으로서 병치가 띄는 의의는 마치 자연에서 그렇듯이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의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 내지는 소환할 때 발생하는 존재의의와 같은 것이다.


한 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構造의

大理石. 그 마당(寺院) 한 구석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앉았다


                              김종삼 <주름간 大理石> 전문


병치은유의 형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시다. 대리석과 마당의 병치를 통하여 이 두가지 이질적인 요송의 결합을 통하여 두 의미가 각기 다른 의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병치은유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는 측면에서 <존재의 시작>으로 파악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시에서 치환은유와 병치은유를 구분하여 사용하기란 어렵다. 그 두 가지가 상호 복합적으로 혼용되어 사용되기 일쑤다. 이러한 결합은 여러 양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첫째로 병치은유 자체가 치환은유적 배음을 환기하는 양식, 둘째로 일군의 상이한 치환은유들이 단순한 취의를 위한 매제로 사용되는 양식. 셋째로 동일한 어귀라 하더라도 그것이 치환은유인가 병치은유인가는 시적 문맥의 변화에 의존하는 양식, 즉 시의 문맥에 따라 치환은유가 되기도 하고 병치은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치환은유는 시 속에서 맡은 역할은 의미를 암시하고 병치은유는 존재를 창조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실한 은유는 치환과 병치 양지를 동시에 수용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