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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평론가 나민애가 뽑은 이달의 좋은 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0. 9. 1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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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평론가 나민애가 뽑은 이달의 좋은 시

 
나민애
□ 촌철(寸鐵)이란 이런 것

빨랫줄
그것은, 하늘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 줄 같다
그것은, 하늘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길게 당겨주는
힘줄 같은 것
이 한 줄에 걸린 것은
빨래만이 아니다
봄바람이 걸리면
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
비가 와서 걸리면
떨어질까 말까
물방울은 즐겁다
그러나, 하늘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당겨주는 힘
그 첫 줄에 걸린 것은
바람이 옷 벗는 소리
한 줄 뿐이다
 (서정춘, 『물방울은 즐겁다』, 천년의시작, 2010.)
 
* 서정춘 시인은 시단에 유행하는 시세(詩勢)를 따르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자기만의 호흡법으로 숨을 쉰다. 그의 호흡은 유난히도 짧고 경쾌하므로 힘이 있다.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면 시를 '짜고 짧게' 쓴다고 할까. '아서라, 마서라'의 마음으로 언어를 뜰채로 걸러낸다. 이 간결한 언어법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건조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수성도, 지성도 쏙 빼고 남은 것은 간결, 담박하여 우리를 즐겁게 한다.
 
 이 시의 제목은 '빨랫줄'. 그는 빨랫줄이 '하늘 아래 처음 본 문장의 첫 줄 같다'고 썼다. 처음 한자(漢字)를 만들 때 세상의 만물을 본떠서 그렸던 것처럼, 정지상이라는 고려 시인이 새를 보고 '새 을(乙)'자가 떠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서정춘 시인은 빨랫줄을 보고 '한 일(一)'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발상, 얼마나 문학적인가. 지극히 문학적인 이런 '한 일(一)'자가 뱃심 두둑이 버텨주어야 거기에 빨래도 걸리고 물방울도 놀고 그런 것이다. 나는 한때 시집『봄, 파르티잔』을 보고 한참을 매혹되어 지냈다. 그리고 올해 나온 새 시집 『물방울은 즐겁다』에서 짧게 읽고 오래 남는 시를 다시 만났다. 답답하고 불편한 시에 지친 당신의 정수리에도, 이 시들은 'oh, so cool!' 멋질 것이다.
 
 
□ 배고픔의 사각지대

환한 대낮
잘 퍼진 쌀밥이 고봉으로 열렸다
이팝나무 가지, 가지 위
구수한 조밥이 대접으로 담겼다
조팝나무 가지, 가지 위
 
밥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다, 그쟈?
누나가 말했다
우리는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아직 못 먹었잖아!
 
한참 만에 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뭔 새들은 저렇게 울어쌓고
지랄하고 그런다냐? 그것은
꾀꼬리 쌍으로 우는 환한 대낮이었다.
(나태주, 『시인들 나라』, 서정시학, 2010.)
 
노랑돈이

민들레꽃 민들레꽃
민들레꽃은 쌈짓꽃
민들레꽃은 노랑돈이
여기저기 엽전꽃
엽전 열닷 냥에
봄날은 간다
 (서정춘, 『물방울은 즐겁다』, 천년의시작, 2010.)
 
* '대한민국 GNP 2만불'이라는 슬로건은 화려하고 고무적이다. 그런데 2만불 세상이 오면 배고픈 세상과는 정말 안녕일까. 88만원 세대는, 다시 유행하는 결핵과 간염은, 혼자 오후를 보내는 어떤 아이의 배고픈 세상은 끝나는 걸까. 나도 당신도 답을 알고 있는 마당에 위에 적힌 시처럼, 누군가의 배고팠던 기억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팝나무는 배고픈 나무. 밥처럼 생긴 자디잔 꽃들이 달려 있어 배고픔을 부르는 나무. 젊은 우리는 이팝나무의 이름이 왜 이팝인지도 잘 모른다. 잘 모른다고 해도, 꽃을 밥으로 보는 시선은 전후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오늘도 배고픈 아이는 굴러가는 빈 과자 봉지만 봐도 회가 동하고 먹는 CF만 봐도 침이 고일 테니까.  민들레꽃은 동심의 꽃. 작고 앙증맞은 병아리 같은 꽃. 그 꽃을 보면서 노란 엽전 한 전 생각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없는 돈 살펴가며 로또를 긁으며 어디 돈 주울 데 없나 두리번거리는 배고픈 마음이 아닌가.  꽃은 피었다 지고 봄은 지나간다. 그리고 화려한 세상은 우리에게 이리 오라 손짓한다. 아무리 손짓하여도, 배고픔의 사각지대는 갈 수 없다. 배고파서 갈 수가 없다.
 
 
□ 슬픈 언어유희

 봄, 족하(足下)에게

  오늘 온다 하여 안날부터 기다렸으나 족하는 이틀이 지났어도 오지 않았소 언덕배기 돋을양지 쪽 노루귀나 봄까치풀에 정신이 팔렸다 해도 한겻이면 넉넉할 것을, 해토머리 오는 길 매화나무에 통통히 꽃물이 올랐다 해도 한나절이면 족할 것을 나는 족하가 일부러 에움길로 오나 싶어 동구밖까지 나가 기다렸으나 족하는 보이지 않았소 내가 직접 족하의 집 근처로 가려 했을 때는 이미 마당에 살구나무 긴 그늘이 드리울 무렵인지라, 주저하다 포기하고 밤새 족하는 도대체 어느 길에 묶인 채 나를 그리워할까 생각하였소
 
  다음날 갓밝이에는 여러 마을로 통하는 난달이라 필시 거쳐 갈 것이라 생각하고 서둘러 그곳에 갔으나 족하는 없었소 나는 한참을 서글프게 서 있다가 끝내는 족하의 집으로 갔는데,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키가 훌쩍 큰 무언가에 마음이 설레었소 그러나 또 헛걸음이란 것을 알고 비로소 원망이 생겼소 소소리바람이 불자 와락 돌아갈 마음이 생겼소 그렇지만 뒤돌아서 키 큰 버드나무에게 만약 족하가 오거든 내 이름을 전해달라 부탁했지만, 돌아올 때는 족하가 어쩌면 버드나무 뒤에 서서 진작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했소
  그러나 이때의 마음을 오늘은 다 잊었소 게다가 족하가 오겠다 한 날은 골안개가 끼었다가 명지바람이 불고 지짐거렸기 때문에 괜찮다 자위했소 멀리서 매화가 터지는지 사방이 우련하니 그것으로 족하오

 (강회진,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문학들, 2010.)
 
하마(河馬)

뜬금없이 당신은 하마가 보고싶다 말했다 끝물의 벚꽃이 흩날리는 날 손과 손을 스치며 동물원에 간다 봄볕 내려와 따글따글 뒹굴고 있는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두어 시간동안 하마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무리지어 생활한다던 하마는 심드렁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이따금 종종종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하마야, 하마야 악을 쓰며 불러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마는 비대한 몸 뒤척이며 누워만 있다가 가끔 쫑긋  세워진 아이 손바닥만한  귀를 털어낼  뿐 끙, 돌아눕는 하마의 엉덩이 쪽으로 한 아이가 주먹을 던진다 오래토록 하마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이 고요해지는 것을 본다 먼먼 생 언젠가는 이번 생을 인정할 수 있을까 아무런 이유도 알 수 없이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던 날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뜨겁게 거절하던 당신을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당신과 나는 무리를 이탈한 하마인지도 모를 일이다 불온한 사랑을 꿈꾸는, 하마하마한 우리는 세상이 뭐라 주먹을 먹여도 가만히 두 귀 털어내며 홀로 고요해지고 싶은 건지도
(강회진, 『일요일의 우편배달부』, 문학들, 2010.)

*  평론가는 먹물에 검게 물든 인간상이라, 언어를 잘 다루는 이를 보면 무릎을 당겨 다가앉게 된다. 우리가 영랑이라는 시인을 좋아하는 가장 큰 속내는 그 안에 거창한 세계관이 있다거나 영웅적 비전이 담겨 있어서가 아니지 않는가. 그저 속살거리듯, 샹송을 듣듯, 개울물 흘러가듯 흘러가는 그 말소리가 입에 붙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 아닌가. 박태일 시인(『풀나라』)의 맛깔나는 말의 활용이라든가, 조연호 시인(『천문』)이 용케 찾아내는 지독히 어려운 한자어라든가, 어쨌든 왼손에 사전을 들고 오른손에 펜을 들고 이말 저말 궁리하는 시인의 모습이란 참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강회진 시인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시인은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지극히 기초적인 언어유희의 방식을 사용한다. 말의 기초방정식을 놓고 새로운 해법을 붙이기란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강회진 시인은 그 어려운 일을 잘 한다. 그리고 그는 어디까지나 놀아보자는 취지에서 발화되는 언어유희를 쓸쓸하게 만드는 일도 잘 한다. 「봄, 족하(足下)에게」에서 '족하(足下)'라는 단어는 동년배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 점잖은 친구의 호칭이 만족한다, 충분하다라는 뜻의 '족하다'로 이어지는데 사실 '만족한다'는 결말은 사실이 아니어서쓸쓸하다. 마찬가지로 시 「하마(河馬)」는 연인과 동물원에 찾아가서 본 생물이기도 하고, '혹여나'하는 가망없는 희망의 발언이기도 하고, 불안의 낱말이기도 하다.   저런. 오늘도 이 시인은 어딘가에서 쓸쓸하게 혼자서 말과 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공감도 백 프로짜리 분석력
 
계급의 발견

 
술이 있을 때 견디지 못하고
잽싸게 마시는 놈들은 평민이다
잽싸게 취해서
기어코 속내를 들켜버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술 한 잔을 다 비워내지 않는 놈들은
지극히 상전이거나 노예다
맘 놓고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놈들은
권력자다
 
한 놈은 반드시 사회를 보고
한두 놈은 반드시 연설을 하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잡고
한두 놈은 반드시 무게를 잰다
 
한두 놈은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한다
슬슬 곁눈질로 겉돌다가 마침내
하필이면 천민과 시비를 붙는 일로
권력자의 눈 밖에 나는 비극을 초래한다
어디에나 부적응자는 있는 법이다
한두 놈은 군림하려 한다
술이 그에게 맹견 같은 용기를 부여했으니
말할 때마다 컹컹, 짖는 소리가 난다
 
끝까지 앉아 있는 놈들은 평민이다
누워 있거나 멀찍이 서성거리는 놈들은 천민이다
먼저 사라지는 놈들은 지극한 상전이거나 노예다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은 놈은
권력자다
그가 다 지켜보고 있다
(류근, 『상처적 체질』, 창비, 2010.)

* 류근 시인은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당선되었으나 시단의 활동을 하지 않았던 시인이다. 그러던 그가 자칭 통속적이라는 시집『상처적 체질』을 발표했다. 이 시인의 이력이 독특한데다가 이 시집, 대놓고 감상적이어서 마음에 든다. 제목이 얼마나 그럴싸한가. 지나가는 모진 말 한 마디에도 밤새워 끙끙 앓는 소심한 감수성에, 늙으나 마나 연애의 두근거림을 꿈꾸는 낭만주의적 삶의 태도를 합쳐놓은 듯. '사실 이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다'라고 말할 만한, 많은 이의 입맛에 맞게 생겼다.

  여기서는 냉소적인 당신이라도 거부 못할, 전혀 '상처'와는 무관한, 그러나 공감도 백 프로짜리 시를 소개한다. 좀 마셔본 사람이라면 다 무릎을 칠 것이다. 그리고 읽다보면, '너, 거기 있니'하며 나의 술친구에게 갑자기 전화하고 싶은 그런 시다. 류근 시인의 분석이 맞는지 오늘밤 각자 실험해보시길.

 

□ 누가 소녀를 울렸나

달의 공장
 
공장 밖으로 심부름을 나온 달빛
심부름을 나온 바람,
심부름을 나온 소녀가 슈퍼에서 쪼글쪼글한 귤을 한 봉지 산다
슈퍼 주인 할아버지가 자기 방식으로 귤을 센다
늘어진 전깃줄에서 나온 백열등이 귤을 또 센다
초코파이가 들어와 부풀어오른 비닐봉투 배가 불룩하다
'이게 모두 얼마예요' 그래서 '이게 모두 다 얼마예요'
'이게 모두 얼마예요'와 '이게 모두 다 얼마예요'라는
말을 들은 귤과 초코파이의 몸이 욱신욱신 속이 상해서 비닐봉투에 들어 있다
자정이 넘어서 귤을 벗기고 있는 소녀와 소녀를 벗기고 있는 기계소리가 아프다
'오늘밤이 지나면 얼마를 줄 거예요?'
귤을 벗긴 이의 손톱은 달을 파먹은 것처럼 노랗게 물이 들었다
무심한 달빛이 공장 지붕을 아프게 지나간다
 (이기인,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창작과비평, 2010.)

* 오늘날 약자는 보여도 강자는 보이지 않는다. 약자는 더욱 처참하게 당하기만 하고, 강자는 점점 잔인해져 간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약자의 훼손과 잔해, 슬픔 같은 것. 강자의 면상에 침을 뱉어 주고 싶지만 그것들은 제법 잘 가려져 있다. CCTV에 잡힌 성폭행범이 강자의 전부가 아니다. 강자는 철거민의 시가지 속에, 금속성의 기계류 속에, 문화시민의 틈바구니에 속물성의 행복 속에 잠복해 있다. 

  이기인 시인은 6미리 다큐를 찍는 현장의 시인이다. 그의 작품에서 세상은 정글이다. 그리고 정글을 키우는 것은 초식동물의 사체인 것 같다. 어리고 여자인 소녀는 그 약자의 상징이다. 소녀는 쉽게 만만할 수 있고, 소녀의 적은 재산은 무리없이 빼앗을 수 있다. 그 아이의 영혼, 육체, 눈물, 아픔 같은 것이 이 시에 흐른다. 그는 시를 통해 더 강해진 강자의 웃음과, 더 약해진 약자의 통곡을 들어보라 말하고 있다. 소녀야, 사랑해주지 못해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시 미안해지지 않을만큼 강해지지 못해서 미안해. 자꾸 미안해만 해서 미안해.


□ 병의 효용

아프니까 그댑니다

암에 걸린 쥐 앞에 열두 씨앗 놓아둡니다
성한 쥐는 거들떠 보도 앉는 씨알 쪽으로
병든 쥐가 시름시름 다가가 그러모읍니다
독경하듯 오물오물, 앞발로 받듭니다
 
병에 걸린 어미 소를 방목합니다
건강한 소들은 혀도 디밀지 않는 독풀
젖통을 출렁이며 허연 혀로 감아챕니다
젖은 눈망울로 뿌리채 뽑아먹습니다
 
그대 향한 내 병은 얼마나 깊은지요
그대 먼 눈빛에서 낱알을 거둡니다
그대 마음의 북쪽에 고삐를 매고
살얼음 잡힌 독풀을 새김질합니다
 
내가 아프니까 비로소 그댑니다
(이정록, 『정말』, 창작과비평, 2010.)

*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서울 아산병원의 1층 엘리베이터 옆에는 조지훈 선생(이분은 시인이라기보다 선생이라고 불릴만하므로)의 '병에게'란 제목의 시가 적혀 있다. 읽으면서 많은 환자들은 병이나 아픔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늘 나쁜 일만은 아니구나 위로받았을 것이다. 아프니까 생각도 하게 되고, 아프니까 돌아도 보게되고, 아프니까 기도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잊었던 많은 것을 다시 얻게 된다. 

  이정록 시인의 이 시도 그렇다. 그대가 나의 병이건, 나의 병으로 인해 그대가 생각이 났건 간에 화자는 병 때문에 경건해지고 병 때문에 마음이 깊어지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일까. 그렇지만 병으로 인해 이런 깨달음을 주려고 하신 조물주의 의도가 있는 거라면, 또 얼마나 감사한 상황인가.

 

□ 자학의 해설서
 
모독

내가 당신을 먹는 풍습에 관하여
할 말이 있다면 당신은 해보라
 
내가 끔벅끔벅하는 것은
감정을 연장하자는 것도 아니고
소리를 치지 못해서도 아니다
 
암굴로 데려와 맨발로 당신을 먹는 것은
극지에 모아둔 당신을 일으켜 살기를 채우는 것
 
깜깜한 당신의 시간을 갈아엎는 것은
환멸의 뼈를 발라 거는 것
 
먹으면 죽어서 달의 빛이 되고
당신의 비명으로 출처가 남겠지만
 
당신은 낡아가야 하리라
너무 많은 절박조차도 마르게 했으므로
그러나 끝도 없이 고단했던 당신의 몸
 
당신을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존재하느라 몸을 떨어 감정을 파먹었던 당신을
 
당신이 숱하게 피를 먹던 기록을 지우는 것이니
내가 이리도 한사코 먹겠다는 것은 나란히 소멸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찢기면서도 그리 알라
 (이병률, 『찬란』, 문학과지성, 2010.)

* 이병률 시인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그의 어투가 참 서사시같다는 것이다. 고풍스럽다고 해야 할까 고전적이면서 멋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의 목소리는 멀리서 울리는 듯하다. 그것도 힘있고 높은 곡조인데 아주 멀리서 울리는 듯 아련하고 비애에 차있다. 그래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의 말투에 늘 매혹당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시인의 아우라일까 싶기도 하다. 

  나는 곡조 잘 타는 시인으로 이병률 시인과, 박정대 시인과, 신동옥 시인을 사랑하고 아낀다. 그런 선입견이니 이번 이병률 시인의 새 시집도 애호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도 서글픈 달밤의 곡조와 같은 풍취-이를테면 이태준 식의 여린 문사의 분위기나, 백석의 방랑의 바람 냄새나, 기생집에 앉은 서생의 옷자락이 뒤섞여있는 듯한 냄새를 맡게 된다.

  나는 시 「모독」이 식인풍습이나,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야생성의 이야기로 읽혀지길 원치 않는다. 이 「모독」이란 내가 나에게 던지는 자학의 해설서이다. 고기를 뜯으며, 내가 나를 뜯는 듯 감정을 실어 씹어본 적이 있는지. 나를 물어뜯을 수는 없으니 다른 무언가를 물어뜯어본 적이 있는지. 그러면서 가슴을 먹먹하게 쳐본 적이 있는지. 시인에게는 그런 적이 있다. 그는 도플갱어처럼 둘로 나뉘어 비난받는 자아(자책하는 자아)가 비난하는 자아(자책이 혐오스러운 자아)의 힐난을 듣고 있다. 비난은 소리없이 이루어졌다. 내부에 일었던 한 갈등이 이 시 안에 장면화되어 있다. 「모독」은 별들이나 달에게는 무척이나 부드러운 그의 내면이 스스로에게는 단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시이기도 하다. 
 
 
 
□ 80년대 우리는 '국민학생'이었다

광기의 재개발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 있구나
모교 앞, 문방구는 이름이 바뀌고
주인 여자도 졸업식마냥 늙었는데
오래된 오락기 위에 먼지가 되어 앉았구나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웃는구나
장마처럼 침을 흘리며 먼지처럼 닦이지 않으며
너를 보는 모교 앞
 
백 원만 하는 너
몰라보는구나 나를
국민 체조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콧물과 함께 흘리던 교문에서
미친년이라고 아무리 놀려도 백 원만 백 원만 했다 넌
기억나니 넌, 고학년 오빠들이 아랫도리에 손을 찌르며
오락하듯 백 원을 넣고 흔들 때도 장마처럼 침을 흘렸다 넌
백 원만 하던 너, 아직도 여기에

몇 떼의 구름이 지나가도록 섰구나
촌지처럼 교실은 시끄러운데
아직도 웃는구나 동전은 소리 내며 웃는데
너는 소리도 없이 진짜로 누가 미쳤느냐고
백 원만 백 원만 하며 묻고 있구나
(서효인,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 민음사, 2010.)

* 80년대는 최루탄의 시대. 이 정석은 70년대 말-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간접인용의 대상이다. 문단에 막 등단하기 시작한 20대 후반, 30대 초반 세대에게 '80년대는 최루탄의 시대였다고 한다'라는 말이 맞다. 최루탄이라. 눈물콧물 흘리며 맡아는 봤다. 지나가다 피해도 봤다. 그런데 제조과정이나 효과적인 투하방법같은 것은 모른다. 이들에게 보다 익숙한 것은 활개치기 시작한 대중문화에 점입가경 빠져들었던 추억이다. 

  진지한 시대에 코흘리개였던 이들이 이제 자랐다고 20년전 추억을 꺼내들면 기성 문단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뭇 궁금해지는 시기다. 그래서 서효인 시인의 이번 작품집의 반응은 더욱 흥미롭다. 81년생 서효인의 시에는 100원이라는 표딱지가 붙어있거나, 동전투입구에 100원 그림이 새겨져 있던 문방구 앞 게임기(아마도 갤러그나 테트리스, 라이덴)가 등장한다. 오래간만에 찾은 낡은 모교 앞 문방구에서 이 게임기를 보았을 때 시인은 처음에 설마, 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반가웠을 것이고 그 이후에 '광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해본 사람은 안다. 미친듯이 동전을 넣지 않으면 안되는 그 마력을. 이 오락기는 지금은 늙어 아무 힘이 없지만 생애의 한때를 사로잡았다. 마력은 오락기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프로레슬링의 스타들, 오락실(스트리트 파이터나 철권) 등을 아우른다. 서효인 시인은 기타 하위 대중문화의 경험을 가지고 시를 쓴다. 고상하지도 첨단적이지도 않았던 국민학생의 문화, 국민학생의 환등상이 이제 문학이 되어 돌아왔다. 올 것이 왔다. 


 
나민애 편집위원 (문화저널21)

1979년 충남 공주 출생, 2007년 7월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 현재 계간 《시와시》편집위원, KAIST 강사. 주요 평론으로는 ‘무성성의 사랑과 병증의 치유법-김남조론’, ‘여윈 신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여성 시학의 갈래화를 위하여’ 등.



- 기사입력: 2010/07/12 [10:49]  최종편집: ⓒ 문화저널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