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겸(시인, 웹진 시인광장 主幹)
*시를 고르기 위해 잡지를 의무적으로 뒤적이다보면 참으로 많은 다양한 시들을 접하게 되고 시인들의 정신적 고투가 눈에 보인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시들이 곧 잊혀질 것인가를 생각하면 서글프기도 하다. 시인자신에게야 평생을 따라다니는 시들이겠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매혹하기란 매우 어렵다. 글은 결국 자신과 사물의 마음읽기인데 자신의 마음을 읽기는 어렵지 않으나 타자의 마음읽기가 어렵다. 내 마음만 진실하게 혹은 내 인식만 화려하게 드러내면 타인이 알아주겠지 하는 태도로는 안된다. 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미인처럼 타고난 재능으로 좋은 시를 쓰는 드문 시인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필사적으로 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경험은 ‘시간의 주름’사이로 접혀져 들어간다. 과거는 흘러갔으므로 소유할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므로 내 소유가 아니며 현재는 순간순간에 변화하므로 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불경은 말한다. 그러나 시인들은 과거의 기억을 혹은 오지 않은 미래의 희망을 현재에 붙들려고 한다.
* 시를 쓰다보면 멋진 구절이라도 전체의 주제나 정서에 벗어나면 자르게 마련이다. 미련으로 갈무리 했다가 다른 시들에서 부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장된다. 시를 쓴 순간의 상황과 정서는 그때의 고유한 개성이 스며든 순간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되살리기가 어렵다. 자른 시나 잘려진 사람도 생존을 위해 꼬리를 자른 도마뱀처럼 그 상황에서는 타당한 이유가 있지만 전체상황과의 화음에 어긋나면 과감히 잘라야한다
*드러난 상징은 주제를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바다에 뜬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얼음을 가지고 물에 잠긴 빙하의 크기를 짐작하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기술이다. 독자의 시선을 상징과 은유 환유 제유로 피곤하게 하고 어려운 인식으로 시에 정나미를 떨어지게 하는 시들 속에 좋은 시들은 한 모금의 청량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시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하는 질문이 있으나 읽어서 인식의 고양과 정서의 즐거움이 있어야한다
* 시가 대량생산되는 현실만큼이나 시의 이론과 해석 창작방법이 난무한다. 자신들의 시가 잡지에 한번 실리는 것으로 끝나는 소비제품으로 전락한 시인의 당황을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어떤 시인의 해석에 의하면 “지루한 본질”에 있다. 독자들이 재미있는 현상의 감각에 빠져있는 소비문화시대에는 “지루한 본질”을 재미로 여기는 창작자들만이 소비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살아남은 “지루한 본질”은 고전이라는 타이틀로 일회적인 현상의 문화에게 복수한다.
*의식은 이미지의 연상을 따라 자유롭게 비약하다. 시들은 나레이션의 내적통일이나 리듬의 외적인 통일이 있어야 어느 정도 독자들을 시인이 의도하고자 하는 지점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말(馬)을 강가로 데려갈 수 있으나 물은 말(馬)의 선택인 것처럼, 시인이 원하는 이미지의 풀밭으로 독자를 몰고 갈수는 있으나 의식이 이미지를 수용하는 가는 독자의 선택이다.
*다시 ‘좋은 시란 무었인가?’ 하는 고답적인 명제를 생각해본다. 법제와 전통에 의지한 고전인가. 새로운 형식으로 기존의 시를 뛰어넘는 부정인가. 고전의 크기와 내용은 대양과 같고 실험시들은 날아오르는 새들 같다. 새들이 날아가면서 거울 같은 고전의 바다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때 추락하지 않는 새가 될 것인가 힘이 다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는 날개의 힘과 심장의 불꽃에 달려있다.
*언어는 상징의 재료이며 의식의 연금술에서 용광로에 던져진다. 납이 금으로 변하는 상징적 변용은 심장의 불길과 재료의 배합비율에 의하지만 그 비법은 아마 시인마다 다를 것이다. ‘현자의 돌’을 쟁취하는 연금기준이 존재한다고 대가들은 말한다. 좌충우돌과 지름길을 반복하면서 시인은 詩作을 반복하고 자신의 詩가 금이 되었는가를 매일 확인하지만 아직은 납이라는 것을 알고 비애와 탄식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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