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 창작 강의 32
시의 해석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제작하여 독자에게 제시하였을 때는 무엇인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시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상실해 버릴 것이다. 시인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하는 그 무엇은 의미에 해당하게 됩니다. 시가 가진 의미는 바로 시인의 뜻이며 독자에게 그 뜻에 공감을 느끼도록 표현해 내는 것이다. 시가 더 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시의 의미가 올바르게 전달되어야 하는 조건을 지니게 된다.
우선 시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독자가 어떻게 시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인지를 살펴본다면 시의 창작 방법론이 세워질 수 있다고 본다. 즉 시를 해석하는 방법에 의해 어떻게 시를 창작할 것인가에 접근한다는 의미다.
시가 가진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시가 쓰여지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의미를 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의미는 언어에 의해 담겨지지만 간혹 기호를 차용하여 시의 내용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가 문자를 통하기에 그 문자에 담겨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 될 것이다. 혹은 기호를 통하더라도 그 기호가 지닌 의미가 전달되는 것이지 기호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바람을 따르려
미루나무 숲으로 갔다
바람소리에 젖어 있을 때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 속에서
내가 떨어지고 있다
젊은 날의 반짝임들이 하늘하늘
뿌리를 향하여 지고
강물 위에도 뿌려진다
어디에 닿아야
눈물이 마를 것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바람을 따르지 않아도
미루나무 숲에 가보지 않아도
빛은 떨어져 발끝에 쌓인다
물 든 미루나무 잎처럼
독자의 시 「미루나무 숲에서」 전문
리챠즈에 의하면 시를 산문으로 의역할 수 없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어떤 문학연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작품에는 몇 가지 유형의 의미들이 있다는 것이다. 말하거나 쓰거나 아니면 듣거나 읽을 때, 우리가 만나게 되는 총체적 의미는 언제나 잡다한 유형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종속적 의미들이 결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어란 본질적으로 한 가지 임무만이 아니라, 동시에 성취해야할 여러 가지 임무를 지니고 있다.
리챠즈는 언어들의 이러한 여러 가지 기능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 네 가지 유형의 기능은 바로 시적 의미의 네 가지 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의미(sence), 감정(feeling), 어조(tone), 의도(intention)이`다.
인간은 말할 때 무엇인가를 말하고, 들을 때 역시 무엇인가를 듣는다. 의미란 바로 이 <무엇>에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무엇, 말하는 항목들이나 묻게 되는 항목들에 대하여 어떤 감정들을 나타내게 된다. 위 시에서도 그 무엇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세계, 혹은 죽음에 대한 견해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이란 리챠즈에 의하면 인생에 있어서의 내포적이고 감화적인 양상일체를 의미한다고 했다. 곧 정서, 정서적 태도, 의지, 욕망, 쾌와 불쾌 등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시에서 언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고 또한 말하는 이는 듣는 이에게 대하여 어떤 태도를 나타낸다. 그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낱말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지님으로서 청자나 독자와는 다르게 낱말들을 배열하거나 선택한다는 것이다. 위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쓸쓸함, 또는 허망함과 같은 갈아 앉은 느낌일 것이다.
<어조>란 결국 이러한 관계를 화자가 자각하고 있음을 반영하며, 알리려는 것들에 대하여 자신만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나타낸다. 또한 자신이 표현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식적으로 거칠게 노출하거나 은폐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위 시에서 어조는 서두르지 않고 모든 세상을 관조하는 모습으로 끌어가고 있다. 세상을 달관한 체념적인 모습의 힘없는 어조는 이 시의 배경을 이루고 있어 은연중에 쓸쓸함을 독자에게 전해 주게 된다.
끝으로 이렇게 자신이 말하려는 것, 말하려는 것에 대한 태도, 청자에 대한 자신의 태도 외에 화자에게는 의도라는 것이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도>는 화자의 목표이며,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시킬 것인가에 그는 몰두하게 된다. 때로 목표는 그의 말을 꾸미기도 한다. 그래서 위 시에서 드러나는 의도는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죽음에 이른다는 것은 당연하고 엄연한 현실이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도를 간직하고 있다.
지도책에 보이는 지명
우연한 인연으로 함안에 가게 되었다
가을은 깊어 가기에 남해 고속도로는
소를 이끌어 가듯 천천히 가야했다
아가는 창문으로 보이는 세상을
두 눈에 다 담을 듯 열심히 쳐다본다
들녘은 추수를 끝내고 차곡차곡 쌓은 볏짚은
자연과 인간의 그림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차량들이 한산해지면서,
도로의 주변은 바람에 날리우는
낙엽들의 무대가 되어 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마을길로 들어오니
탐스런 감나무가 집집마다 열려 있었다
가을 햇살에 영글은 빠알간 색채.
더불어 전해오는 풍요 그렇게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독자의 시 「함안으로」 전문
위의 작품을 읽어보면 매우 구체적인 진술로 차있다. 다시 말하면 시의 범주보다는 산문의 범주에 넣어야 할 작품으로 보인다. 쓰여진 말들의 내포와 외포가 단일하며 의미 곧 표피에 나서 있기에 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시가 되기 위한 조건은 형상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며, 시적 표현을 획득해야 한다. 그러기에 시는 산문의 구조와는 다른 모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를 산문적으로 풀어 말할 수 없음은 결국 이들 네 가지 종류의 의미들 가운데 어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과학 논문을 쓴다고 해 보자. 보다 효용성 있는 논문이 되기 위해서는 대체로 체계적인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이루어질 것이다.
1) 자신이 말해야 할 의미를 생각한다.
2) 자신이 다룰 제재나, 이제까지 그 제재를 다룬 남들의 의견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낸다.
3) 이때 어조는 학술적인 인습에 따라 정해진다.
4) 자신의 의도가 전체적인 면에서 아주 명료해야 한다.
그러나 시의 경우, 의미적 요소인 진술은 정서적 목적에 예속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인은 자신이 취급하는 제재와 논리적으로 관계가 없이 진술을 하거나, 은유 혹은 기타 기법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관계없는 대상들을 표현하거나, 논리적인 무의미의 세계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시의 특성이기도 한 것이다. 시는 논리적인 접근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감성을 통한 의미의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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