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호 시인의 <시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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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 시인이 쓴 <시에 전화하기>라는 책. 앞에 몇 쪽을 넘기니 아는 이름이 나온다. 윤중호. 지난해 이맘때 세상 떠난 시인이다.
해직되었을 때 몇 차례 술을 마신 적이 있고, 집이 같은 김포공항 부근이어서 택시도 같이 타고 오다 헤어진 적이 있다. 공항 어귀에서 헤어질 때 택시비를 내려고 하면 한사코 못 내게 하여 택시 안에 던져놓고 내린 적이 있다. 그 다음부터 만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곤 했던 윤중호 시인. 친하진 않았지만 한 해에 한 번은 술자리에서 만났던 것 같다.
그러다 지난해 7월말쯤 친구 김종만이 윤중호 시인이 병원에 있다며 문병을 가자고 했다. 그토록 건강했던 시인은 병색이 완연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남짓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에 갔다.
시래기
곰삭은 흙벽에 매달려
윤 시인은 시를 쓴 동기와 의미를 묻는 강은교 시인의 편지에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어떤 날인가, 터덜터덜 완행버스를 타고 오지를 지나는데, 외딴집 흙담에 지난 겨울 시래기가 대롱거리고 있더라구요. 그걸 보니까(제가 원래 시래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갑자기 내가 이제껏 해온 짓들이 누추하기 짝이 없더라구요. 이렇게 살다가는 '따뜻한 시래기죽 한 그릇'도 못 되겠더라구요.
내가 쓴 시나 내 삶이 외롭고 허기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되었으면 고맙겠다는 얘기지요. 우리가 아무리 잘난 척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는 모두 측은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시래기)이니까, 여기서 맺은 인연을 소중하고 고마운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려면 몸 안에 있는 물기(탐욕이나 욕심 같은 것)를 지워야지만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떠난 윤중호 시인의 시집 <고향길>이 1주기를 맞춰 나왔다.
고향길
산딸기가 무리져 익어가는 곳을 알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넘실넘실 춤추는 꽃상여 타고 가시던
그 길이 참 아득하다.
-------------------------------------- 윤중호
출생 1956년 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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