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시조 사이, 웃음과 눈물 사이
ㅡ시집,『쌍봉낙타의 꿈』 2011년, 박성민 『고요아침』
이승하(시인, 중앙대 교수)
서양에서 시의 시작은 서정시가 아니었다. 서사시와 극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호머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긴 서사시요 극적인 영웅담이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오늘날의 희곡과 비슷한 극시였다. 또한 비극이었다. 중세에 가서야 음유시인들이 나타나 시에 곡을 만들어 붙여 시장에서 연회석상에서 부르며 돌아다녔다. 동양에서는 시의 근원에 민요가 있었다. 동양에서 제일 오래된 시가집 『시경』은 공자가 제자들을 동원해 채집한 민요가 근간이 되었다. 다시 말해 동양에서는 시가 태생적으로 노래였다. 동양에서는 이들을 가인이라고 불렀다. 노래하는 사람, 곧 시인이면서 가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대가요 「황조가」 「공무도하가」 「구지가」는 모두 노래[歌]였다. 통일신라시대의 향가는 이 땅에서 우리 식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었다. 고려가요, 시조, 악장, 가사(歌辭), 판소리, 민요, 무가……. 운문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라면 모두 음악성을 지니고 있었다. 시는 오랫동안 노랫말이었다. 시조는 시조창이라 하여 노래하듯이 불렀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후 전개되는 자유시의 역사는 어찌 보면 음악성의 상실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소리내어 읽고 음미하던 시에서 눈으로 보고 장면을 떠올리는 시로의 전환이 바로 근대시에서 현대시로의 전환이라고 봐도 크게 틀린 것이 아니리라. 운문이 점차 산문화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것이 장형화이다. 시가 어마어마하게 길어져 시집의 두세 쪽 혹은 서너 쪽을 차지하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에 10쪽에 달하는 시가, 장석원의 『태양의 연대기』에는 40쪽에 달하는 시가, 김경주의 『기담』에는 15쪽에 달하는 시가 나온다. 길기도 길지만 난해하기가 한정 없어 시를 읽는 행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끝까지 읽기가 부담스럽다.
불행 중 다행은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들이 ‘21세기시조’ 동인을 결성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짧은 시를 표방하며 시를 쓰고 있는 이들이 ‘작은詩앗 채송화’ 동인을 결성해 8권의 동인지를 내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으로 등단한 박성민은 ‘21세기시조’ 동인의 주축 멤버로서 활발하게 작품세계를 펼쳐가고 있다. 일단 그의 등단작을 보기로 하자.
때늦은 여름밤에 그대 마음 읽는다
지금도 하늘에선 칼 씌워 잠그는 소리
보름달 사약 사발로 떠 먹구름을 삼켰다
어탁(魚拓)처럼 비릿한 실록의 밤마다
먹물로 번져가는 모반의 꿈 잠재우면
뒷산의 멧새 소리만 여러 날을 울고 갔다
―「허균」 전문
조선조의 사회모순을 고발한 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여러 번 과거에 급제하였고 천추사(사신)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벼슬이 좌참찬까지 이르렀다. 나이 쉰이 되었을 때 왕의 조카사위인 의창군을 왕으로 추대한다는 역모 혐의를 받아 동료들과 함께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박성민은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 허균이라는 인물의 초상을 한 편의 시조로 그려 보았다. 허균은 참형을 당했으므로 ‘사약 사발’이라는 시어는 적당치 않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허균에 대한 동정심에서 출발하여 애도의 마음을 듬뿍 담아 한 편의 시조를 완성하였다. 시조여서 그런 것이지만 한 자 더 넣을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심사를 한 이근배와 한분순은 “이야기 서술로 흐르지 않고 내적으로 승화시켜 역량을 발휘하였고, 빼어난 이미지 형상화까지 더해져 시조의 품격과 날카로운 감수성을 함께 갖춘 절창”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새로움은 덜하지만 단단한 내공을 높이 사 당선작으로 뽑은 것 같다.
박성민은 당선 이후 누구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자, 이제부터 10편 정도의 대표작을 뽑아 읽어보면서 그의 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나가도록 하자.
절름발이 여자가
벙어리 사내에게
눈빛으로 손가락으로 말들을 꿰매고 있다
아파트 모서리에 놓인 초원 구두 수선점
사내는 구두를 받자
닳은 뒷굽을 떼어낸다
초원 끝에서 들려오는 말갈족의 말굽소리
사내는 구름 속에 들어가 지평선을 깁고 있다
―「구두의 내부」 제 1, 2연
구두 수선공 부부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남편은 벙어리이고 아내는 절름발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의좋은 부부의 일터에서 초원의 끝에서 들려오는 (구두 수선점의 이름이 ‘초원’인 모양이다.) 말갈족의 말굽소리로 뻗어간다. 눈빛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벙어리의 저린 가슴을
헤집고 나온 말의 뿌리
한 번도 사랑한단 말, 못 해주고 살아온
사내의 착한 눈망울은 디딜 곳 없는 허공이다
못처럼 박혀드는 널
남겨두곤 죽을 수 없다
마른 입술 축이는 사내의 눈이 들어가는
구두의 닳아진 내부는 저녁처럼 어두워진다
한 평 반의 수선점은
낡고도 비좁은데
어둠이 막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하늘에
사내는 성긴 별들을 총총히 박아 놓는다
―「구두의 내부」 제 3~5연
구두의 닳은 내부는 저녁처럼 어둡다. 사내는 어두워져 가는 저녁하늘에 성긴 별들을 총총히 박아 놓는다. 구두의 내부는 생활이요 성긴 별은 희망이다. 이들의 삶이야 고달프기 짝이 없지만 서로 사랑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으니 밤이 와도 완전한 어둠에 휩싸이지는 않는다. 구두에 박는 못을 “저녁하늘에/ 사내는 성긴 별들을 총총히 박아 놓는다”로 표현한 결구는 이 시의 미학을 극적으로 완성시킨다.
이 작품은 시조인가 시인가. 음수 3/5/4/3을 아직도 시조 종장의 기본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각개 연의 종장이 3/6/4/3, 3/7/4/4, 3/6/5/4, 3/6/4/5, 3/5/3/5이므로 시조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음보로 보면 어느 정도 규칙을 지키고 있으므로 시조로 볼 수 있다. 특히 각개 연의 진행 과정이 균등하므로 자유시를 쓰는 시인들은 대다수 이 작품을 시조로 볼 것이다. 이 작품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박성민은 시조와 시의 중간지점에 서 있다. 시조 같은 시, 시 같은 시조를 쓰고 있다고 할까. 음수와 음보에 대한 규칙을 완고하게 적용하려고 드는 시조시인들에 대해 박성민은 현대시조의 유연함에 대해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구두의 내부」와 형식이 얼추 비슷한 「천장」을 보자.
산 중턱에 나를 놓고 피리 부는 라마승들
칼금 지난 세상엔 지평선이 생겨나고
노을의 핏물이 뚝뚝
배어나는 저녁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내 등뼈가 보인다
너를 오래 바라보던 눈알들이 쏟아질 때
가렵다 눈을 비비던
습관이 아직 남았나
허공을 쥔 바람들이 인골피리 소릴 낸다
여기저기 달라붙고 흩뿌려진 내 몸을
까마귀 독수리들아
하나도 놓치지 마라
나는 썩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흩날리는 연기가 저녁밥을 짓는다
바람이 읽는 불경에
향냄새가 배어난다
―「천장」 전문
「구두의 내부」는 제1, 2행이 시조의 초장, 제3행이 중장, 제4행이 종장인 셈이었지만 「천장」은 제1행이 초장, 제2행이 중장, 제3, 4행이 종장인 셈이다. 음수를 헤아려보면 「천장」이 시조에 더 가깝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형식적인 면이 아니라 내용이다. 박성민은 시조라는 형식 안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지 않고 까마귀와 독수리가 날아다니는 먼 허공으로 자유롭게 비상한다. 몸은 비록 죽어 까마귀와 독수리의 밥이 되겠지만 “나는 썩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와 같이 마음은 불로장생을 꿈꾼다. 화자를 죽은 사람으로 설정한 것은 좋은 생각이었다. 시조의 형식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자유로운 시적 비상을 꿈꾼 훌륭한 작품으로 간주하고 싶다.
노숙의
밤은 차다
동상 걸린 동상 하나
나라 걱정 너무 했나, 트레인에 실려 가서
갑옷도 벗기지 않고 링거바늘 꼿는다
장군, 장군,
급한 소리
고개 돌려 바라보니
병실 안에 노인 둘이 장기를 두고 있어
한산도 담배 심부름 시킬 사람 한 명 없다
화포 같은 전등불이
터질까 두려워서
난중일기 필체처럼 꼿꼿하게 잠 못 들고
한강에 쪼그려 앉아 거북선을 방생한다
―「이순신 입원하다」 전문
제1연은 5행, 제2연도 5행, 제3연은 4행으로 되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시조임이 드러난다.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이 작품이 시조에 가깝다 안 가깝다가 아니라 내용의 신선함에 대해 논하고 싶다. 광화문에 서 있던 이순신 동상이 보수작업을 위해 이천으로 옮겨졌다가 온 적이 있었다. 시인은 그 사실을 언론에서 접하고 희한한 상상을 한다. 이순신이 광화문의 노숙자이고 “동상 걸린 동상”이라는 상상. “트레인에 실려 가서/ 갑옷도 벗기지 않고 링거바늘 꽂는다”. 실려 간 병실 안에 있는 두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어 한산도 담배를 시킬 사람이 없다는 것도 기막힌 상상이다. 제3연에 이르면 마침내 환한 미소를 짓게 된다. 화포, 난중일기, 거북선이라는 시어가 환기하는 것은 이순신이지만 시인은 사실 대한민국의 현실, 인간세상의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왕새우 소금구이」와 「신춘 심사평」, 「지구본이 기울어진 이유」 등은 시인의 유머감각이 보통 수준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세 시는 단시조로 보기 어렵다. 시조라고 한다면 완전히 변형된 시조, 시조의 범주를 넘어선 작품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사설시조로 보거나.
다음의 네 사람이 최종심에 올랐다
노숙자의 현실성은 벼랑 끝이 만져지나 바닥에 누운 서정이 딱딱한 게
흠이었고, 강바람의 운율은 풋풋하고 시원한데 피가 도는 바람의 내력을
그려내지 못했다 민들레의 시상은 허공에 뿌리를 두나 유목의 족보들을
들춰내지 못했다 구제역의 발굽 닳은 시간들은 감동이었다 눈물 그렁한
큰 눈을 보며 심사자는 망설였다 비명이 허공을 받들 때 남는 건 한숨인
데, 구제역의 서정성이 외양간을 넘길 바라며…….
올해는 당선작 없음, 심사위원 나들이
―「신춘 심사평」 전문
많은 시인 지망생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기를 열망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보면 그해마다의 경향이 있다. 시대적 이슈를 잘 포착해서 당선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인데 그것을 포착하지 못해 고배를 마신 적이 있는지 박성민은 이런 재미있는 시를 썼다. 해설자의 생각으로는 어느 해는 실험성이 강한 시들이, 어느 해는 전통성이 강한 시들이 당선이 된다. 또 어느 해는 상상력이 뛰어난 시들이, 또 어느 해는 구체성이 돋보이는 시들이 당선이 된다. 노숙자를 다룬 시는 현실성이 있긴 하나 이미 낡은 것이고 구제역을 다룬 시는 감동적이지만 서정성을 담보해내지 못해 당선작 없음으로 나온 것인가. 소재와 주제, 제목과 표현이 다 재미있다. 특히 “심사위원 나들이”라는 화룡점정이 그렇다.
이 작품은 조선조 말기에 서민 계층에서 많이 쓴 사설시조의 가락을 지닌 현대의 사설시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중장이 늘어난 형태로 제1, 3연은 평시조의 형식적인 틀을 정확히 지키고 있다. 시조시단에서 박성민의 이런 작품을 시조로 보는지 자유시로 보는지 궁금하다. 사설시조를 방불케 하는 작품으로는 이것 외에도 「노을」 「소화기」 「다도해」 등이 있다. 어떻게 보면 반시조(半時調) 같고 어떻게 보면 반시조(反時調) 같다. 아무튼 시조의 현대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시인이 바로 박성민이다.
시조는 많은 경우 자연친화적인데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혹은 풍자정신이 돋보이는 것도 박성민의 작품이 지닌 특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알타이 신화」 「사도세자에게」같이 역사의식에 입각해서 쓴 작품도 있는데,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고 쓴 작품으로 「성형시대」 「깡통은 유통기한보다 먼저 죽을 수 없다.」 「미래일보」 「동물의 왕국」 「엑스트라」 등을 꼽을 수 있다. 굴곡 많았던 이 땅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풍자정신을 보여준 작품으로는 「외로운 날의 창세기」 「마늘」 「이소룡처럼 울다」 「금남로에서 묻다」 등이 있다.
태초에 내가 있어/ 슬픔을 창조하니라// 박통은 전통을 낳고/ 전통은 노통을 낳고/ 대낮은/ 저녁에게 말하라/ 어두워지라 더욱더
―「외로운 날의 창세기」 부분
깔수록 가슴 알알이 깨지는 속병이여
독한 것, 눈물의 씨앗까지도 독한 것
깔수록 자꾸 눈물 나는 미안한 80년대여
―「마늘」 후반부
(상략) 안부도 묻기 전에 트럭에 가득 실려 금남로에 깃털 떨구고 사라져간 친구들, 한때는 목청 높여 퍼덕이던 닭들도 이제는 횃대에 앉아 벼슬을 으스대지.
―「이소룡처럼 울다」 부분
이런 작품에서는 미경험 세대의 1980년 광주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때 그 일’이 과거사의 한 페이지로서 접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 그림자가 우리 사회 곳곳에 드리워져 있음을 시인은 일깨워주고 있다. 군인이 국가의 수반이 되어 독재정치를 한 것은 1961년부터 1992년까지 장장 31년간이었다. 시인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1980년대에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의 보상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민주화의 희생양이 되겠다고 목청을 높였던 사람들 중 일부가 지금은 권력을 쥐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이런 유의 작품, 즉 확실한 주제의식을 지닌 작품은 시조시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성민 시집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시어가 ‘울음’이나 ‘울다’, 혹은 ‘눈물’이라고 생각한다. 웃음에 대해서는 특유의 유머감각을 보여준 몇 편을 보았으니 더 이상의 논의하지 말고, 지금부터는 울음과 눈물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사진 속 나는 늘
눈감은 채 웃고 있다
고사상에 눈감은 돼지의 웃음처럼
전생에 놀다간 세상 흐릿하게 인화된다
새들이 찰칵찰칵
셔터 소리로 날아가던
너 떠난 그날에도 벽에 기대 눈감았다
세상의 빛들 앞에서 시력 잃은 눈물들
―「눈감은 사진」 전문
시적 화자는 사진 속에서 늘 눈감은 채 웃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고사상에 눈감은 돼지의 웃음처럼” 실제로는 웃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 떠난 그날에도 나는 벽에 기대 눈을 감았고, “세상의 빛들 앞에서 시력 잃은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웃음으로 짐짓 슬픔을 감추려고 해보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 시를 읽고 혹자는 민주화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시인의 이별 이야기를 궁금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화자는 이별이든 사별이든 너를 떠나보냈다. 화자의 슬픔은 대개의 경우 울음과 눈물을 동반한다.
목숨 걸고 사랑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목젖까지 닿은 울음
그으면 확 타오를
주황빛 알전구 속에
그윽한 향기 한 줌
―「모과」 전문
시인은 모과를 보고 사랑했던 여성과 함께했던 그 어떤 날들을 떠올렸던 것이리라. 그런데 기억은 “목젖까지 닿은 울음”을 유발하고, 결국 “그으면 확 타오를// 주황빛 알전구 속에/ 그윽한 향기 한 줌”으로 이어진다. 모과는 기억에서 울음으로, 울음에서 향기로 이어질 때 매개체 역할을 한다. 왜 모과를 보고서 “목젖까지 닿은 울음”이라는 표현을 얻게 되었는지, 시인에게 물어보고 싶다. 비 오는 밤이면…… 시적 화자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이런 밤
비는 언제 울음이 되는가
젖은 마음 끌고 다니던 한 시절이 있었네
어깨를 들썩이는 먹구름
울컥 쏟아 내리던.
습기 찬 사랑이
유리창에 뿌옇고
바지 끝 적시던 사내들도 귀가하면
빈 길만 얼룩져 빛나는 밤
비는 혼자 울음이 되네
희망은 덧니처럼
통증을 견디는 것
목청에서 맴돌던 노래들이 쏟아져
파열의 울음이 되는 밤
노래는 언제 흐느낌인가
―「비 오는 밤」 전문
비 오는 밤이면 대개들 센티멘털리즘에 사로잡히게 마련인데 시인도 예외가 아니다. 빗소리를 흥겨운 소리로 듣지 않고 소리 내어 울면서 내리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람들 다 귀가한 밤길에 비는 혼자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 목청을 맴돌던 화자의 노래는 끝내 흐느낌으로 변한다. 시집에는 이처럼 울음 이미지가 참으로 많이 나온다. 사람들은 힘없이 소주잔인 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간다(「소주잔」). 어떤 날은 글을 쓰는 시간에도 눈물을 흘린다.
내가 사는 감옥은
한 평 반의 독실
벽에는 살다간 이들
눈물이 얼룩진 방
쓰러져 뒹구는 소주병과
고개 꺾인 담배꽁초
옆방에도 윗방에도
그리고 아랫방에도
벽이 무너져라 우는
울음소리 들려왔다
노을과 저녁 바람만
소인 유효로 남은 창
―「원고지」 전문
원고지의 빈칸은 시인의 작업실 방이기도 하다. 그 작업실 방은 눈물이 얼룩진 방이다. 고시원 쪽방 같은 데서 글을 쓰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이들은 벽이 무너져라 우는 것인데, 물론 그 울음은 내면의 울음이리라. 화자가 “울다 잠든 간밤에는/ 벽에 기대 꿈을 꾸며/ 이마에 소름처럼 돋는 빗소리를”(「삼십 센티미터 자에 내리는 빗소리」) 듣기도 한다. 오래된 책장 앞에서 화자는 한참 울기도 한다.
침 묻은 문장이 침묵 속에 덮여 있다
네 안에 접혀 있는 페이지로 잠들던 나
엎드려 울던 시간이
눈물로 얼룩졌다
금지된 문장들은 어디로 가버렸나
수군대던 연애는 찢겨지고 버려졌나
책들을 다 수거해서
분서(焚書)하는 저녁놀
입가의 물집처럼 좀먹은 낱말들과
코피로 얼룩져 읽지 못한 행간들
너 떠난 빈자리에서
넘어지는 나를 본다
―「오래된 책장」 전문
창작은 이렇게 산고를 동반한다. 아르튀르 랭보의 말마따나 상처 없는 영혼은 어디에도 없다. 소설을 보라. 해피엔딩보다 비극적인 결말이 월등 많지 않은가. 결혼으로 골인하는 행복한 연애보다 가슴 찢어지는 이별이 더 많은 것이 인생사이다. 결혼을 해도 태반이 이혼하는 세태이다. 화자는 “코피로 얼룩져 읽지 못한 행간들”을 보려다가 끝내는 너 떠난 빈자리에서 넘어지고 만다. 시 쓰기의 어려움이여. 세상사의 고달픔이여.
시인의 가족사도 종종 울음을 동반한다. “눈과 비를 다 맞고 온/ 아버지의 시간들/ 거친 수염의 아버지가 병풍 뒤에 숨어 운다”(「귀면와」). 할아버지는 임종할 때 화자의 손을 꼭 쥐고 글썽이는 눈망울로 바라보며 유언을 한다(「닭발」). 세상의 어느 어머니는 화자를 낳고 싶지 않아 한 통이 되는 간장을 마시지만 결국 생명체가 세상에 태어나자 어깨를 떨며 운다(「애기좀잠자리」). 화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안 계신 방을 청소하며 눈물을 흘린다(「할머니 생각」). 그러니까 박성민은 사회참여의식을 지닌 강건한 의지의 시인이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여린 감성의 시인이기도 하다.
시집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쌍봉낙타」인데 해설자는 이 작품을 일종의 자화상으로 읽었다.
낙타는
모래바람에 날아간 꿈들을
눈빛으로 끌어 모아 혹 속에 밀어 넣는다
두 혹은 낙타의 꿈들이 파묻힌 무덤이다
등에 진 짐들은
오히려 가벼운 것
발굽 아래 흩어지는 모래알을 셀 때마다
낙타가 걷는 사막엔 모든 길이 등 돌린다
―「쌍봉낙타」 전반부
두 개의 혹은 시와 시조일 수도 있고 웃음과 눈물일 수도 있다. 이 두 개의 혹을 지닌 시인은 사막을 간다. 문제는 이놈의 사막에서는 모든 길이 등을 돌린다는 것. (시인들은 박성민을 시조시인라고 하고 시조시인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의 길을 걸어가자니 무진장 힘들고 한없이 막막하다.
발자국의 경전(經典)은
읽는 순간 사라지고
소소초를 씹는 저녁 입 안에 피가 돌면
모래를 뒤집어쓴 저녁이 신기루로 일어선다
바람은 시리고 차게
사막을 횡단한다
눈썹에 앉은 모래, 헛무덤을 등에 지고
나보다 늦게 온 죽음을 기다리는 쌍봉낙타
―「쌍봉낙타」 후반부
하지만 어쩌랴, 이미 이 길로 들어선 것을. 시인으로서의 역정과 고뇌는 제3연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입 안에 피가 도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낙타는 아픔을 표현하지도 않고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사막의 밤은 춥다. 밤바람은 시리고 차게 사막을 횡단하는데 불쌍한 쌍봉낙타, ‘헛무덤’을 등에 지고 “나보다 늦게 온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존재이기에 죽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품을 쓰면서,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부활하는 존재가 시인이니까. 입 안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소소초를 씹은 쌍봉낙타처럼 늘 길 떠나는 존재, 시인의 길을 걸어갈 박성민의 앞날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다. 시인은 운명적으로 소소초를 씹는 쌍봉낙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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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
경북 의성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同 대학원을 졸업.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저서로는 시집으로 『사랑의 탐구』(1987), 『우리들의 유토피아』(1989),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1991), 『폭력과 광기의 나날』(1993), 『박수를 찾아서』(1994), 『생명에서 물건으로』(1995)가 있고, 시론집으로 『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1997),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1999), 『한국 현대시 비판』(2000), 『한국 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2001)와 그밖에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1997)과 시선집 『젊은 별에게』(1998)가 있음.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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