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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만다라 임영조 대한 지나 입춘날 오던 눈 멎고 바람 추운 날 빨간 장화 신은 비둘기 한 마리가 눈 위에 총총총 발자국을 찍는다 세상 온통 한 장의 수의에 덮여 이승이 흡사 저승 같은 날 압정 같은 부리로 키보드 치듯 언 땅을 쿡쿡 쪼아 햇볕을 파종한다 사방이 일순 다냥하게 부풀어 내 가슴 속 빈 터가 확 넓어지고 먼 마을 풍매화꽃 벙그는 소리 들린다, 참았던 슬픔 터지는 소리 하얀 운판을 쪼아 또박또박 시 쓰듯 한 끼의 양식을 찾는 비둘기 하루를 헤집다 공친 발만 시리다 아니다, 잠시 소요하듯 지상에 내려 요기도 안 될 시 몇 줄만 남기면 되는 오, 눈물겨운 노역의 작은 평화여 저 정경 넘기면 과연 공일까? 혼신을 다해 사바를 노크하는 겨울 만다라! 임영조 시인이 작고하기 몇 달 전 운니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문학지에서 주관하는 신인상 작품을 심사하는 자리였지요. 그는 매우 건강하고 활달했습니다. 그러나 한달쯤 지났을 무렵 그가 암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얼마 후 운명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그는 고인이 되었습니다. 허망했습니다. 임영조 시인은 1943년 충남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세순입니다. 주산초·중을 거쳐 서울 대동상고(현 대동세무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19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문단에 나왔구요. 그는 서울로 올라와 외숙 김재호의 집(마포구 대흥동 산 1번지)에 기거하며 학교에 다녔는데 3학년 때는 결석일수가 무려 40여일 정도가 되네요. 학교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지 68명 중에 29등을 했고,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담임 의견란에 보면 문예에 대한 소질이 탁월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문재(文才)를 조금씩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임영조 시인은 등단 후 오랜 침묵을 지키다가 1985년 첫 시집『바람이 남긴 은어』를 펴낸데 이어, 『갈대는 배후가 없다』『귀로 웃는 집』등 6권의 시집을 남겼습니다. 2003년 작고할 때까지 그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겨울 만다라」에는 눈 위에 발자국을 찍는 비둘기가 등장합니다. 시인은 눈 덮인 천지에서 수의를 보고 저승을 봅니다. 죽음입니다. 허망의 망망대해에 “압정 같은 부리로 키보드 치듯 / 언 땅을 쿡쿡 쪼아 햇볕을 파종”하는 비둘기는 곧 시인의 모습이겠지요. 허망에 빠지지 않고, 시인은 죽음 너머의 만다라를 봅니다. 극락정토의 장엄함을 표현한 도솔만다라쯤 되겠지요. 파종한 햇볕 덕분일까요. “가슴 속 빈 터가 확 넓어지고 / 먼 마을 풍매화꽃 벙그는 소리”를 시인은 듣고 있습니다. 그 소리는 오래 참았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결국 생의 고달픈 슬픔은 풍매화꽃으로 만개하여 시인 앞에 나타납니다. 여기서 만다라는 곧 한 편의 시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이어서 화자는 비둘기와 시인을 동일시합니다. 온종일 언 땅을 헤집고 다녀도 공친 발은 시리기만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세상에 대한 큰 욕심이 없습니다. 다만 “요기도 안 될 시 몇 줄만 남기면 되는” 자족의 삶을 긍정합니다. 몇 줄의 시를 위해 진력하는 시인의 “눈물겨운 노역의 작은 평화”는 아름답습니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하찮기 그지없는 일이겠지요. 한 끼 양식도 되지 않는 시 쓰기란 얼마나 무용한 일인지요. 그러나 그 무용의 가치는 존재의 힘이 됩니다. 시는 바로 그 자리에 머물러 만다라로 피어납니다. “혼신을 다해 사바를 노크하는” 비둘기, 시인의 시 쓰기는 곧 공(空)의 세계를 넘어서는 고투입니다. 「겨울 만다라」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옵니다. 종종거리며 비둘기가 그려낸, 머잖아 사라져버리고 말, 그러나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생의 아픈 이력이 흰 눈 위에 펼쳐집니다. “작은 평화”의 화폭 위에 오늘도 비둘기 몇 마리 종종거리며 걸어갑니다. 좋은 시인이 되려면 좋은 시 300편을 암송하고, 200편을 쓰고, 100편을 퇴고하라고 말했던 시인은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문학은 진실로 진실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던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시는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우리 앞에 있습니다. “가다 보면 길들은 자주 끊기네 / 끊어진 길은 때로 아련한 기억 속 / 메꽃빛 등불로 사운대거나 / 벼랑 끝에 이르면 언어로 집을 짓네” 임영조 시인이 삶의 벼랑 끝에 지은 언어의 집에 오늘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가 지친 몸을 쉴 것입니다. 그의 고단한 삶이 잠시나마 평안하기를!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
<가져온 곳 :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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