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도깨비기둥 / 이정록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1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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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기둥


  이정록

 

 
  당신을 만나기 전엔,
  강물과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나 두내받이, 그 물굽이쯤이 사
랑인 줄 알았어요.
 

  피가 쏠린다는 말, 배냇니에 씹히는 세상 어미들의 젖꼭지쯤으
로만 알았어요.
  바람이 든다는 말, 장다리꽃대로 빠져나간 무의 숭숭한 가슴 정
도로만 알았어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한밤
  강줄기 하나가 쩡쩡 언 발을 떼어내며 달려오다가, 또 다른 강물
의 얼음 진군進軍과 맞닥뜨릴 때!
  그 자리, 그 상아빛, 그 솟구침, 그 얼음울음, 그 빠개짐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을 만나기 전엔,
  얼어붙는다는 말이 뒷골목이나 군인들의 말인 줄만 알았지요.
불기둥만이 사랑인 줄 알았지요.
 

  마지막 숨통을 맞대고 강물 깊이 쇄빙선碎氷船을 처박은 자리,
흰 뼈울음이 얼음기둥으로 솟구쳤지요.
  당신을 만난 뒤에야,
  그게 바로 도깨비기둥이란 걸 알았지요. 열 길 물 속보다 깊은
  한 길 마음만이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강물은 흐르는 게 아니라 쏠리는 것임을.
 

  알았지요, 다 얼어버렸다는 것은 함께 가겠다는 것.
  금강金剛기둥으로 지은 울음 한 채, 먼 하늘주소까지.

 

 


-천양희|장석남 외 지음『시, 사랑에 빠지다』(현대문학. 2009)

 

 

|시작노트|


  북한강과 남한강이 얼음으로 진격하다 만나는 자리에 도깨비기둥
이 솟구친다. 기둥 하나 깎는 데 일 년이다. 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푸른 강물이다. 그저 쏠림뿐이다. 그 상아빛 뼈 울음에 주춧돌이 되
리리, 사랑아. 하늘주소까지 함께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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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93년 ≪동아일보≫로 등단.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제비꽃 여인숙』『의자』등.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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