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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과 헛꽃에 대해 생각하는
강재남
오후 두시에 내리는 비는 수직이다
머리를 곤두박질치듯 땅으로 들이미는 내밀한 직유다
직유는 자유라는 다른 이름의 시니피앙 부정문에 흡착된 자유의 함몰
수직에 익숙한 우리가 언제 수평인적 있었던가요, 묻고 싶은 날
쓰러지듯 창가에 기댔다 수평으로 물결치는 물무늬
빗물이 기이한 수평으로 인식되던 날, 내가 마음대로 수평을 읽어버리
던 날
산수국이 피었다 어제 산길에서 보았던 보랏빛 무더기
가난한 심장을 가진 헛꽃과 차가운 참꽃이야기가 바위틈에 숨어있었지
시린 색깔을 그대로 안아버린 헛꽃과 무심한 참꽃이 빗물을 받아내고
있었지
헛꽃을 닮은 당신과 이름만 참꽃인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가
당신의 수평과 나의 수직의 흔들리는 것을 생각하다가 당신의 감싸기
와 나의 단절을 생각했었지 그러다가
다정함이 좀 더 애매한 방법으로 빗물에 깃든다는 걸 그러다가
우리는 얼마나 더 부드러워질 것인지 그러다가 사무치게 떨리는 당신
을 감지했었지
나는 한껏 몸을 가볍게 만들었어
창가로 뛰어내리는 숭고한 당신을 훔치고 싶었어
빗물은 내밀하게 직유로 내리고 수평을 끌어다 눈앞에 놓아보는
자유로운 오후 두시에,
-계간『문학선』(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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