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역광(逆光) / 권현형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1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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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逆光)


권현형

 

 
서울에 함박눈이 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주 밖의 일인 듯 아득해졌습니다
저는 지금 고대 왕조의 수도에 와 있습니다
무덤과 사원들이 가까이 살아 있습니다
 

내리는 곳이 아닌 역(驛)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으로
운명으로부터 먼 운명으로 전생에서 후생까지
저는 당신을 아쉽게 사랑합니다.
 

꽃집 앞을 지나갈 때 당신 소식을 들었습니다
격자 창문 안쪽에서 숨은 눈들이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사실은 풍경을 보기 위해 창문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저 또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 풍경을 봅니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만 그 뒤에
가려진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부처는 지워지고 부처 손톱이 자라듯
나무가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 뒤에, 뒤에, 우리는 아프게 서 있습니다

 

 


-계간『애지』(201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