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기차 생각 / 이윤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1. 1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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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 생각

 
  이윤설

  

 

  슬픈 생각을 따라 가다보면 나는 기차가 되어 있다 
  몸이 길어지고 창문의 큰 눈이 밖으로 멀뚱히 뜨여있다. 나는 길고, 달리다
보면  
  창밖으로 식구들이 보인다. 어쩌자고 식구들은 추운 민들레처럼 모여 플랫
폼에서 
  국을 끓이고 있는지 내가 지나가는 데도 나를 발견하지 못하여 기다리고만
있다  
  나는 슬픈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네가 서 있는 곳을  
  지난다 푸르지 않은 짐가방처럼 너는 늘 혼자다 내가 가려던 소실점 같기도
하고  
  신호등 같기도 한데 나는 너를 지나친다 그러면서도 너는 아주 많이 늙어서  
  내 할아버지만큼 오래 살아서 그런데도 네가 나의 사랑인 것을 쉽게 알아본다  
  슬픈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친구들이 건너지 않는 건널목을 지나고  
  하늘이 파래서 조각조각 깨지는 어느 자오선의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부근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나온 곳들이 나의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빗방울들이 금세 차장 가득 별처럼 와 뒤덮히고 나의 차오르는 눈물이
  내 몸의 일생을 지나는 것을 지나친다 슬픈 생각을 따라 가다 보면  
  당신들의 육체를 길게 관통하며 강을 건너가고 바다의 슬픔을 건너
  내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된다.

 

 

 

-계간『작가세계』(201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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