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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 소월 - 산유화 / 박남철 - 산유화 / 이근화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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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진달래꽃』. 매문사. 1925 : 『김소월 전집』. 문장.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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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박남철

 


1
만약,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시인 노릇 하라면


이 1교수 1잡지 시대에,
이 1시인 1잡지 시대에,


시 한 편에 10만원
7만원, 5만원, 혹은 3만원……


아니라면,


요즘의 대부분의 시인,
잡지들이 그러하듯이,


만약 원고료조차 없다면, 없었다면,


아, 내가 이 시인 노릇을 이토록 지겹도록 계속해왔을 것인가?
쉰, 여덟의 이 나이에사 이제서야 겨우, 깨닫게 되는구나!
나는, 특히,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들은,
저 보살이란 존재가, 보디사트바(Bodhisattva)란 존재가
시인이란 존재가 결코 될 수 없을 뿐인


모습의 존재들이었을 뿐임을.


(나리, 나리, 메나리토리……)


아아, 잘도 나 꽃 피어났어요, 나 꽃 피어났어요 하며
잘도 빵긋빵긋 웃어가며, 사진 찍혀가며, 우리 스스로를
사진 찍어가며(이름 불러가며) 살아온 것이로구나.


아아아,


나,


나나나 나, 나,


나여, 나여, 나여
불쌍한 나의 이 한때 그 유명해지고도 싶었던, 꽃
꽃, 그 꽃, 이 꽃일 뿐인 저 아상의 세월들이여.


2
서울에서 안성, 안성으로, 아냐, 서울에서 용인으로
다시, 용인에서 안성으로, 아냐 다시, 안성에서 서울로
1년 사이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해버리고 말았구나.


꽃도 좋고 산도 좋고 다 좋긴 하다, 만(卍),
아냐, 꽃이고 나발(―꽃)이고 당나발이고 간에,
내가 상갓집 개꼴이 다 되어버리고, 만, 것만큼은


갈데없이, 엄연한, 사실인 듯하도다.

 

 

 

―격월간『유심』(2010년 11-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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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이근화
 

 

내 마음속에 꽃이 피었네

불가능한 꽃

불가해한 꽃

 
저만치 버려진 팬티는 내 것이 아니다

나를 모른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꽃잎은

누구에게 던질까

누가 될 거니

오늘 나의 산책과 명상에는 무늬가 없다

내일 우리의 논쟁과 수다는

테이블 위의 접시를 몇 번이나 갈아치울지

주인을 잃은 이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는데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꽃잎의 어지럽고 어려운 방향을 따라가 본다

 

 

 

―계간『문예중앙』(201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