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진달래꽃』. 매문사. 1925 : 『김소월 전집』. 문장. 1981)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
-------------
산유화
박남철
1
만약,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시인 노릇 하라면
이 1교수 1잡지 시대에,
이 1시인 1잡지 시대에,
시 한 편에 10만원
7만원, 5만원, 혹은 3만원……
아니라면,
요즘의 대부분의 시인,
잡지들이 그러하듯이,
만약 원고료조차 없다면, 없었다면,
아, 내가 이 시인 노릇을 이토록 지겹도록 계속해왔을 것인가?
쉰, 여덟의 이 나이에사 이제서야 겨우, 깨닫게 되는구나!
나는, 특히,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들은,
저 보살이란 존재가, 보디사트바(Bodhisattva)란 존재가
시인이란 존재가 결코 될 수 없을 뿐인
모습의 존재들이었을 뿐임을.
(나리, 나리, 메나리토리……)
아아, 잘도 나 꽃 피어났어요, 나 꽃 피어났어요 하며
잘도 빵긋빵긋 웃어가며, 사진 찍혀가며, 우리 스스로를
사진 찍어가며(이름 불러가며) 살아온 것이로구나.
아아아,
나,
나나나 나, 나,
나여, 나여, 나여
불쌍한 나의 이 한때 그 유명해지고도 싶었던, 꽃
꽃, 그 꽃, 이 꽃일 뿐인 저 아상의 세월들이여.
2
서울에서 안성, 안성으로, 아냐, 서울에서 용인으로
다시, 용인에서 안성으로, 아냐 다시, 안성에서 서울로
1년 사이에 세 번이나 이사를 해버리고 말았구나.
꽃도 좋고 산도 좋고 다 좋긴 하다, 만(卍),
아냐, 꽃이고 나발(―꽃)이고 당나발이고 간에,
내가 상갓집 개꼴이 다 되어버리고, 만, 것만큼은
갈데없이, 엄연한, 사실인 듯하도다.
―격월간『유심』(2010년 11-12월)
-------------
산유화
이근화
내 마음속에 꽃이 피었네
불가능한 꽃
불가해한 꽃
저만치 버려진 팬티는 내 것이 아니다
나를 모른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꽃잎은
누구에게 던질까
누가 될 거니
오늘 나의 산책과 명상에는 무늬가 없다
내일 우리의 논쟁과 수다는
테이블 위의 접시를 몇 번이나 갈아치울지
주인을 잃은 이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는데
비가 와도 젖지 않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꽃잎의 어지럽고 어려운 방향을 따라가 본다
―계간『문예중앙』(2012년 겨울호)
'<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 > 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상병 - 약속 / 새 / 귀천 -주일(主日) / 나의 가난은 (0) | 2013.07.06 |
---|---|
김남조 - 범부(凡婦)의 노래 / 평안을 위하여 / 겨울 바다 / 아가雅歌 4 (0) | 2013.07.06 |
백석 - 여우난골족 / 모닥불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0) | 2013.07.05 |
김현승 - 견고한 고독 / 푸라나너스 / 가을의 기도 / 산까마귀 울음소리 (0) | 2013.07.05 |
산까마귀 울음소리 / 김현승 -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0) | 2013.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