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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 범부(凡婦)의 노래 / 평안을 위하여 / 겨울 바다 / 아가雅歌 4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3. 7.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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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100주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판한 한국문학선집에 수록된 시 4편)

 

 


범부(凡婦)의 노래


김남조

 

 

1
바다는 큰 눈물
웅얼웅얼 울며 달을 따라가지
그 눈물 다 가면
광막한 벌이라네
바다는 그저 눈물
눈물이 더 불어 누워 돌아오지
그리곤 또 가네
몇 번이라도 달 때문에

 

2.
이 바람을 어이랴
실바람 한 오라기 살갗에만 닿아도
사람 내음에 절은 머리털 한 움큼에
열 손가락 찔러 넣듯
진홍의 관능에 몸서리치며 내 미치네.
이적진 몰랐던
이리도 피가 달아진 일
아아 바람에 바람에
이 살 다 풀어 주어야
내가 살겠네.

 

3.
사랑만으론 결코 배부르게 못해 줄
지금 세상의 사나이를
신이 한 가지만을 주신다 하면
나는 역시 한 남자를 갖겠다.
패전한 국민이 소리를 모아 부르는
국가(國歌)의 절망과 그 소망을 품겠지

 

 


(『설일』. 문원사. 1971 :『김남조 전집』.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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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위하여


김남조

 

 

평안 있으라
평안 있으라
포레의 레퀴엠을 들으면
햇빛에도 눈물난다
있는 자식 다 데리고
얼음벌판에 앉아 있는
겨울 햇빛
오오 연민하올 어머니여


평안 있으라
그 더욱 평안 있으라
죽은 이를 위한 진혼 미사곡에
산 이의 추위도 불 쬐어 뎁히노니
진실로 진실로
살고 있는 이와
살다 간 이
앞으로 살게 될 이들까지
영혼의 자매이러라


평안 있으라

 

 

 

(『평안을 위하여』. 서문당. 1995 :『김남조 전집』.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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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말았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심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겨울 바다』. 상아출판사. 1967 : 『김남조 전집』. 국학자료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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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雅歌 4
 

김남조

 

    
가장 깊은 뿌리에서
아슴히 높은 정수리까지의
내 외로움을
사람아 너에게 드릴밖엔 없다
동쪽 비롯함에서
서녘 끝 너메까지
한 솔기에 둘러 낀
하늘가락지.
돌고 돌아서
다시 오는 이 마음을

 

 


(『빛과 고요』. 시문당. 1982 : 『김남조 전집』. 국학자료원. 2005)
―최동호 신범순 정과리 이광호 엮음『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문학과지성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