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유/김선우 -- 카톡 - 좋은 시 35
그 걸인을 위해 몇 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앤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드넓은 얼음장에 박힌 피 한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없이 적막했던 것 같고-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을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 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계간『창작과비평』(2011년 봄호)
―시집『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나 한번쯤 걸인에게 작은 지폐나 동전을 건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시 속의 화자처럼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통의 감정인 인지상정 때문일 것이다. 걸인들도 많다보니 지하철 계단에 가오리처럼 납작 엎드려있는 걸인을 출근길에도 만나고 지하철을 타고서도 만난다.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는 봉사걸인부터 어떤 때는 아무 말도 없이 안내쪽지와 함께 껌을 무릎에 놓은 다음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껌을 회수해가기도 하는 꼬마에서 조금은 몸이 불편한 사람까지... 어쩌다 보게 되면 그나마 주머니 속에 동전을 만지작거리기라도 할 텐데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려 데면데면해지고 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데 걸인과 노숙자가 뭐가 다를까. 사전에 보면 '빌어먹고 사는 사람이 거지'이고 노숙은 한둔, 한데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대가 양산한 노숙자의 개념은 속내가 훨씬 더 복잡다난하다. 걸인들에 비해 노숙자들은 훨씬 당당한 편인데 이들은 무료급식소를 이용하면서 굽실거리지도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무료 이동하며 점심은 어느 지역의 어느 교회가 맛있게 나온다는 정보를 자기들끼리 교환을 한다. 어느 교회에서는 밥 얻어먹고 용돈으로 오천 원까지 얻어서 도락이나 음주 등 다른 용도로 쓴다고 한다. 겨울이면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나눠주는 오리털파카가 몇 개나 되며 더러워지면 빨지 않고 버린다고까지 한다. 이쯤이면 우리사회는 나눔에는 인색한 것 같지 않는데 단순히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만으로는 노숙자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는 것 같다.
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못한다고 했으나 우리가 남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을 때 어떤 마음이 우러나서 행하는 것일까. 단순히 동정과 연민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의 리퀘스트' 프로를 보고 전화 한통이라도 누르는 행위는 살아오면서 겪은 동병상련의 아픔도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를 비춰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의 내가 먼 미래의 당신이 되지는 않을는지, 남에게 하는 보시는 결국은 자기자신에게 한다는 시의 의미도 되짚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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