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편지·카톡·밴드/카톡 ♠ 좋은시

가정 / 박목월 - 카톡 좋은 시 80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5. 4. 09:06
728x90

 

  카톡 좋은 시 80      

가정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간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 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어.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시집『박목월 시선집』(믿음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