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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도둑/이상국 - 카톡 좋은 시 189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9. 2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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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189 

    달려라 도둑/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세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저씨는 아직 제 정신이 아니다.

   ―그러게, 그리고 요즘 현금 가지고 있는 집이 어딨어,  다 카드 쓰지. 거 돌대가리 아냐?라고 거드는 피아노집 주인 말끝에 명절내가 난다.

   한참 있다가 누군가 이랬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이웃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밤이슬 내린 차 지붕에 화석처럼 찍혀있는 도둑의 족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시집뿔을 적시며(창비, 2012)

 

 

출처: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 나희덕 시배달 2009-02-02 

 

 

 

  달려라 도둑

 

  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세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네랑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저씨는 아직 제 정신이 아니다.

  ―그러게, 그리고 요즘 현금 가지고 있는 집이 어딨어, 다 카드 쓰지. 거 돌대가리 아냐?라고 거드는 피아노집 주인 말끝에 명절내가 난다.

  한참 있다가 누군가 이랬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이웃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밤이슬 내린 차 지붕에 화석처럼 찍혀있는 도둑의 족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계간내일을 여는 작가(2008년 겨울호)

시집뿔을 적시며(창비,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