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좋은 시 214 겨울 편지 ―안도현(1961∼ )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 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 나도 길에다 할 수 없이 발자국 몇 개 찍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상기도 눈가에 물기 질금거리면서,
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08』(동아일보. 2014년 01월 15일) |
겨울 편지
―안도현(1961∼ )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 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
나도 길에다 할 수 없이 발자국 몇 개 찍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상기도 눈가에 물기 질금거리면서,
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08』(동아일보. 2014년 0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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