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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편지/안도현 - 카톡 좋은 시 214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5. 12. 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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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톡 좋은 시 214  

   겨울 편지

   안도현(1961)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 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

   나도 길에다 할 수 없이 발자국 몇 개 찍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상기도 눈가에 물기 질금거리면서,

 

   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08(동아일보. 20140115)

 


 

겨울 편지

 

안도현(1961)

 

댓잎 위에 눈 쌓이는 동안 나는 술만 마셨다

눈발이 대숲을 오랏줄로 묶는 줄도 모르고 술만 마셨다

 

거긴 지금도 눈 오니?

여긴 가까스로 그쳤다

 

저 구이(九耳) 들판이 뼛속까지 다 들여다보인다

 

청둥오리는 청둥오리 발자국을 찍으려고 왁자하게 내려앉고,

족제비는 족제비 발자국을 찍으려고 논둑 밑에서 까맣게 눈을 뜨고,

바람은 바람의 발자국을 찍으러 왔다가 저 저수지를 건너갔을 것이다

 

담배가 떨어져 가게에 갔다 오느라

나도 길에다 할 수 없이 발자국 몇 개 찍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을

 

땅바닥에 찍고 다니느라

신발은 곤해서 툇마루 아래 잠들었구나

상기도 눈가에 물기 질금거리면서,

 

눈 그친 아침은, 그래서

이 세상 아닌 곳에다 대고 자꾸 묻고 싶어진다

넌 괜찮니?

넌 괜찮니?

 

 

 

일간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 208(동아일보. 201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