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
산나리꽃/임영조
지난 사월 초파일
산사에 갔다가 해탈교를 건너며
나는 문득 해탈하고 싶어서
함께 간 여자를 버리고 왔다
그런데 웬지 자꾸만
그 여자가 가엾은 생각이 들어
잠시 돌아다보니 그 여자는 어느새
얼굴에 주근깨 핀 산나리가 되어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또
내가 사는 마을까지 따라와
가장 슬픈 한 마리 새가 되어
밤낮으로 소쩍소쩍
비워둔 내 가슴에 점을 찍었다
아무리 지워도 지울 수 없는
검붉은 문신처럼 서러운 점을.
― 시집 『그림자를 지우며』,(시와시학사,2002)
―임영조 시전집『그대에게 가는 길 1(제2시집)』(천년의 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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