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시 한 편 읽기 25-외상값/신천희>
어머니가 방세를 받으려고 방을 놓은 것도 아니고 우유 값을 받으려고 우유를 먹인 것도 아니겠지요. 세를 살고 젖을 먹었으면 먹은 만큼은 몰라도 다만 몇 백분의 일이라도 갚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 생각뿐이지 그 또한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전생의 부모가 현생의 자식으로 환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그럴까요. 다들 부모보다 제 자식들에게는 제 입에 것도 넣어주며 없는 거 없이 잘해주고 있습니다. 내리 사랑이라는 말처럼 저도 한때 부모에게서 받은 것은 자식에게 내려주는 것이 도리는 아닐지라도 순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승에 가서라도 갚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식은 부모에게 뻔뻔하고 영원한 채무자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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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값/신천희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동안 세들어 살고도
한 달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 년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계간『문학·선』(2006년 겨울호)
<어머니 시 모음>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4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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