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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 한 편 읽기 31 -후레자식/김인육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5. 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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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 한 편 읽기 31 -후레자식/김인육>



후레자식/김인육  

 

고향집에서 더는 홀로 살지 못하게 된

여든셋, 치매 앓는 노모를

집 가까운 요양원으로 보낸다

 

시설도 좋고, 친구들도 많고

거기가 외려 어머니 치료에도 도움이 돼요

 

1년도 못가 두 손 든 아내는

빛 좋은 개살구들을 골라

여기저기 때깔 좋게 늘어놓는다, 실은

늙은이 냄새, 오줌 지린내가 역겨워서고

외며느리 병수발이 넌덜머리가 나서인데

버럭 고함을 질러보긴 하였지만, 나 역시 별수 없어

끝내 어머닐 적소(適所)로 등 떠민다

 

에비야, 집에 가서 같이 살면 안 되나?

어머니, 이곳이 집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나는 껍질도 안 깐 거짓말을 어머니에게 생으로 먹이고는

언젠가 나까지 내다버릴지 모를

두려운 가족의 품속으로 허겁지겁 돌아온다

 

고려장이 별 거냐

제 자식 지척에 두고 늙고 병든 것끼리 쓸리어

못 죽고 사는 내 신세가 고령장이지

 

어머니의 정신 맑은 몇 가닥 말씀에, 폐부에 찔린 나는

병든 개처럼 허정거리며

21세기 막된 고려인의 집으로 돌아온다

천하에 몹쓸, 후레자식이 되어

퉤퉤, 돼먹지 못한 개살구가 되어


시집잘가라 여우(문학세계사, 2012)     

계간다층(200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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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바치며/김인육

 

땅에게 아버지를 바친다

주르륵,

한 줌 흙으로 당신을 허락한다

덥석, 덥석, 깨무는 대지의 저 붉은 아가리!

평생 땅만 파먹고 살았던 농군

고맙고 미안한 신세

이제, 당신께서 보시할 차례

 

나무그릇에 담긴 최후의 사내가

희망도 절망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북어포의 사내가

나의 원본(原本)인 사내가

땅의 육보 식탁에 차려진다

일렁거리는 산천

뒤돌아보니

어느새 땅의 배가 불룩하다


시집잘가라 여우(문학세계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