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시 한 편 읽기 33 -아들의 여자/정운희>
아들은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고 한다. 기르는데도 딸처럼 재미도 없고 뚝뚝한 데다 살갑지도 않다고 한다. 딸과 아들을 키워본 엄마의 변이다. 예전에는 딸이 도둑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딸은 비행기를 태워주는데 아들을 비행기를 사 줘야 한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가진 엄마들의 한 마디는 단호하다. 믿음직하다는 것이다.
엄마의 믿음을 배신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들은 커가면서 엄마 아닌 다른 이성에 눈을 뜨고 아들의 눈과 귀는 엄마 아닌 다른 이성을 향해 열려 있다. ‘잘 웃는 햄스터처럼/구르는 공깃돌처럼/아들의 주머니 속 여자’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복잡하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의 여자들처럼 꺾어 누르는 상대도 아니어서 경쟁을 펼칠 수도 없다. 엄마는 이제 아들의 눈치에다 ‘아들의 주머니 속에서 눈을 뜨고 감는 여자’ 의 눈치까지 보아야한다.
아들을 키우면서 그때마다 적절한 무기로 아들을 제압했지만 이제 엄마에게 주머니 속 아들의 여자를 제압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없다. 시대에 부응하는 디지털 무기를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아날로그 무기로 자신의 감성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아들은 엄마의 만고의 연인, 영원히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보다 더 큰 무기일 것이다.
<아들에게 시 모음 - 문정희/김명인/감태준/최하림/서정윤/민영/이시영/김종해/김희정>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53398
아들의 여자/정운희
아들의 주머니 속 여자
잘 웃는 햄스터처럼
구르는 공깃돌처럼
때론 모란꽃처럼 깊어지는 여자
노란 원피스의 그녀가 온다
한두 걸음 앞장 선 아들을 깃발 삼아
잡았던 손을 놓았던가
얼굴이 달아오르는 유리창
어깨를 타고 흔들리는 백
주머니 속에서 느꼈을 봉긋한 가슴
나는 떨어지는 고개를 곧추세우려 커피 잔을 들었다
아들은 비어 있는 내 옆자리를 지나쳐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여자를 향해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어깨
조금 더 명랑한 손가락들
알처럼 둥근 무릎
빨대를 물고 있는 구멍 속 우주처럼
아들의 주머니 속에서 눈을 뜨고 감는 여자
식사 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주머니 속 여자와 입 맞추며 혹은 만지작거리며
깔깔거리다가 뜨거워지다가
때론 예민해지기도 하는 즐거운 방식으로
들락거리는 곰 발바닥이 쑥쑥 자란다
구름의 무늬는 몇 장일까?
모래가 생성되기까지의 시간은?
―시집『안녕, 딜레마』(푸른사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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