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편지·카톡·밴드/하루 시 한 편 읽기

하루 시 한 편 읽기 33 -아들의 여자/정운희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5. 11. 23:01
728x90


<하루 시 한 편 읽기 33 -아들의 여자/정운희>


  아들은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고 한다. 기르는데도 딸처럼 재미도 없고 뚝뚝한 데다 살갑지도 않다고 한다. 딸과 아들을 키워본 엄마의 변이다. 예전에는 딸이 도둑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딸은 비행기를 태워주는데 아들을 비행기를 사 줘야 한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가진 엄마들의 한 마디는 단호하다. 믿음직하다는 것이다.  

 

   엄마의 믿음을 배신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들은 커가면서 엄마 아닌 다른 이성에 눈을 뜨고 아들의 눈과 귀는 엄마 아닌 다른 이성을 향해 열려 있다. ‘잘 웃는 햄스터처럼/구르는 공깃돌처럼/아들의 주머니 속 여자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복잡하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의 여자들처럼 꺾어 누르는 상대도 아니어서 경쟁을 펼칠 수도 없다. 엄마는 이제 아들의 눈치에다 아들의 주머니 속에서 눈을 뜨고 감는 여자의 눈치까지 보아야한다.

 

   아들을 키우면서 그때마다 적절한 무기로 아들을 제압했지만 이제 엄마에게 주머니 속 아들의 여자를 제압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없다. 시대에 부응하는 디지털 무기를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아날로그 무기로 자신의 감성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아들은 엄마의 만고의 연인, 영원히 내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보다 더 큰 무기일 것이다.


<아들에게 시 모음 - 문정희/김명인/감태준/최하림/서정윤/민영/이시영/김종해/김희정>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53398


아들의 여자/정운희  

 

아들의 주머니 속 여자

잘 웃는 햄스터처럼

구르는 공깃돌처럼

때론 모란꽃처럼 깊어지는 여자

노란 원피스의 그녀가 온다

한두 걸음 앞장 선 아들을 깃발 삼아

잡았던 손을 놓았던가

얼굴이 달아오르는 유리창

어깨를 타고 흔들리는 백

주머니 속에서 느꼈을 봉긋한 가슴

나는 떨어지는 고개를 곧추세우려 커피 잔을 들었다

아들은 비어 있는 내 옆자리를 지나쳐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여자를 향해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어깨

조금 더 명랑한 손가락들

알처럼 둥근 무릎

빨대를 물고 있는 구멍 속 우주처럼

아들의 주머니 속에서 눈을 뜨고 감는 여자

식사 중에도 길을 걷다가도

주머니 속 여자와 입 맞추며 혹은 만지작거리며

깔깔거리다가 뜨거워지다가

때론 예민해지기도 하는 즐거운 방식으로

들락거리는 곰 발바닥이 쑥쑥 자란다

구름의 무늬는 몇 장일까?

모래가 생성되기까지의 시간은    

 

시집안녕, 딜레마(푸른사상,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