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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 한 편 읽기 37 -너의 뒤에서 -아들에게/서정윤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5. 2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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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시 한 편 읽기 37 -너의 뒤에서 -아들에게/서정윤>



아들에게 시 모음 - 문정희/김명인/감태준/최하림/서정윤/민영/이시영/김종해/김희정최형태

http://blog.daum.net/threehornmountain/13753398


  한고조 유방은 항우와 백번 싸워 아흔아홉번을 지고 한번을 이겼다고 한다. 그 한번을 이긴 것이 마지막 싸움에서 이겨 천하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전력이 말하듯 유방은 항우와는 싸움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는다. 한번은 부모가 항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항우는 유방에게 항복을 하지 않으면 네 부모를 팽형을 시킨다고 했다.  팽형은 솥에 물을 끓여 삶아 죽이는 처형인데 이 말을 받은 유방은 끓이면은 나도 한 그릇을 퍼 다오 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항우는 유방에게 인질이 안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식들을 마차에 싣고 쫓기게 되었다. 뒤에서는 기병들이 점점 가까이 추격을 해오고 마차는 속력이 나지 앉자 다급해진 유방은 마차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자식들을 밖으로 던져버리고 도망을 갔다고 한다. 내던져진 자식은 나중에 유방의 뒤를 이어 왕이 되지만 유방은 단순히 저 혼자 살기 위해 자식을 버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어깨엔 수많은 백성과 대의라는 보다 큰 명제가 있었기 때문에 사가들은 그른 비난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시대상황이 다르고 제왕이 전장에서 겪어야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보통 시대에 평범한 아버지와 자식에게 비교하는 자체가 무리이긴 하지만 유방은 패륜의 불효자이며 박정하고 매정한 아버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죽하면 항우가 유방의 모진 성격을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보고서야 알았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아버지의 자식들 사랑은 어떠할까. 시대가 강한 아버지를 만들기도 하고 약한 아버지를 만들기도 하겠지만 오늘날의 아버지는 아들을 이길 수가 없다. 아들을 위해 가진 것 다 내어주고 온갖 수발을 다하지만 아들이 보험이 아닌 시대에 더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분신 같으면서도 분신이 아니어서 애증이 교차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보는 뒷모습은 애잔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