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죽국수
박기영
형, 기억나? 초등학교 입학한 뒤 형과 단 둘이 시꺼먼 먹물 난닝구 묻어나는 교복 입고 처음 외갓집 가던 길, 신새벽 아버지가 건네 준 삶은 달걀을 버스가 출발하기 전 목메도록 먹고 창문으로 밀어닥치던 먼지바람에도 두리번거림 무서워 오금 저리던 길.
새벽부터 달리던 주둥이 튀어나온 버스는 결국 자갈길 위에서 투덜대더니 엉덩이 까고 강가에 퍼질러 앉아 버렸지.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솥단지 걸고 천렵을 했지. 길가 미루나무에서 매미들 미친 듯 울고, 솥단지 하나 물가에 걸고 어떤 사람은 투망으로 여름을 건져 올리고. 어떤 사람들은 모래밭에 심어놓은 푸성귀를 뜯어 와서는, 여드름 잔뜩 돋아난 터벅머리 조수가 퍼질러 앉은 버스 뜯어 고치는 동안 호박과 뒤엉켜서 끓어오르던 솥단지. 누군가 쌀자루에서 한줌 쌀알을 꺼내고 어떤 사람은 국수 꺼내 한솥 끓여내던 점심. 날은 타올라 강가에 모래알도 노랗게 달아오르고 언제 떠날지 모른 채 끓여 먹던 어죽. 입안 가득 생선가시 같은 가난들 모이고 비포장된 인심들 모여 벌였던 잔치 같았던 천렵.
1965년 영동에서 보은으로 가던 보청천. 강가에 버드나무들 국수발 같은 머리칼 물위에 드리우고 우리는 한 마리 버들치가 되어 그 속을 헤엄치고 다녔지. 그 한없는 목덜미를 검게 물들이던 검은 먹물로 만든 학생복 입고 외갓집 가던 날, 기억나, 형?
작품 출처 : 박기영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모악, 2016.
■ 박기영 | 「어죽국수」를 배달하며…
닿아보지 못한 곳이고 닿아보지 못한 시간이지만, 저 버스를 타고 외갓집에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저 느린 풍경에 들어 한솥 가득 끓여낸 어죽국수 한 그릇 단단히 얻어먹고 나온 느낌. 저는 골목 초입에서부터 ‘외할매’를 부르며 외갓집으로 들던 조무래기를 잠시 떠올려보기도 했는데요. 특별했던 유년의 기억도 이따금 떠올려보며 ‘재촉’보다는 ‘여유’를 갖는 하루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시인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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