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서광일
11월 저녁 버스정류장 앞이었다
겨울이 도착하는 소리를 다급하게 들었다
사람들은 버스가 멈추는 지점을 향해 달렸고
몇 개의 얼굴들이 확대되었다가 사라졋다
부모와 자식들은 간단명료하게 이별 연습을 하고
남편과 아내는 무관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사라지지 않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했다
어머니는 수술한 사실을 감추려고 전화기를 꺼 놓았다
아버지는 원래 아픈데다 원체 말이 없다
이 계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돈이다
다가올 인생이 끊임없이 12월만 반복될 것 같아서
두툼하고 견고한 외투를 입은 자들만 훔쳐보았다
사람들은 어깨에 맨 근심을 붙잡고 버스에 올랐다
어떤 추측도 인간관계도 분명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날 조심스레 지워 버린 게 분명했다
작품 출처 : 서광일 시집,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파란, 2017.
■ 서광일 |「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를 배달하며…
오싹오싹, 날 추워지고 주머니 가벼워지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가족을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몇 개의 얼굴들이 확대되었다가 사라”지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가진 것 많지 않은 우리에게 “다가올 인생이 끊임없이 12월만 반복”된다면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들 것만 같은데요,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인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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