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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일] 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박성우)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17. 11. 3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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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일, 「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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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

 

서광일

 

 

11월 저녁 버스정류장 앞이었다

겨울이 도착하는 소리를 다급하게 들었다

 

사람들은 버스가 멈추는 지점을 향해 달렸고

몇 개의 얼굴들이 확대되었다가 사라졋다

 

부모와 자식들은 간단명료하게 이별 연습을 하고

남편과 아내는 무관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사라지지 않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했다

어머니는 수술한 사실을 감추려고 전화기를 꺼 놓았다

 

아버지는 원래 아픈데다 원체 말이 없다

이 계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돈이다

 

다가올 인생이 끊임없이 12월만 반복될 것 같아서

두툼하고 견고한 외투를 입은 자들만 훔쳐보았다

 

사람들은 어깨에 맨 근심을 붙잡고 버스에 올랐다

어떤 추측도 인간관계도 분명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날 조심스레 지워 버린 게 분명했다


작품 출처 : 서광일 시집,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파란, 2017.

 

 

 

■ 서광일 |「이런 식으로 서성이는 게 아니었다」를 배달하며…

 

 
    오싹오싹, 날 추워지고 주머니 가벼워지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가족을 챙겨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몇 개의 얼굴들이 확대되었다가 사라”지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가진 것 많지 않은 우리에게 “다가올 인생이 끊임없이 12월만 반복”된다면 정말이지 감당하기 힘들 것만 같은데요, 모두에게 따뜻한 겨울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인 박성우

 

 

문학집배원 시배달 박성우

– 박성우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강마을 언덕에 별정우체국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당 입구에 빨강 우체통 하나 세워 이팝나무 우체국을 낸 적이 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동시집 『불량 꽃게』 『우리 집 한 바퀴』 『동물 학교 한 바퀴』,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받았다. 한때 대학교수이기도 했던 그는 더 좋은 시인으로 살기 위해 삼년 만에 홀연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애써 심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