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에세이
시의 위기
― 신춘문예 당선시들을 읽고
임 보
매년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 발간된 신문의 신년호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된다. 금년도 기대를 가지면서 시 작품들을 읽어 보았는데 예년과 마찬가지로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늘의 시가 왜 이런 경향으로 흘러가는지 참 답답하기만 하다.
다시 들춰보고 싶지도 않지만, 내 소회를 피력하기 위해서 금년(2019)도 신춘문예 당선시 몇 편의 부분을 여기 인용해 보기로 한다.
늙어도 우리는 무섭습니다 엄마는 겁보입니다 매일 밤이 오다니 엄마는 차를 몰고 저를 데리러 옵니다
보조석의 방석은 꽃무늬입니다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 스무 살에 꾸었던 꿈의 일부를 이룬 것 같아요
―H신문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부분
자신을 닮은 사람을 세 번 만나면 죽는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지렁이와, 지렁이 모양 젤리
그걸 공포라 할 수 있나요
머리와 꼬리를 알 수 없는 젤리는
달콤하고 모호한, 주인모를 관계들
우리는 점점 닮아 가는데
누가 누굴 닮은 건지 모를 때는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지금
2%의 당신 자신과, 98%의 당신의 당신
순도 높지 않은 당신, 그리고 나
끝 모를 바닥으로 가라앉아요
―C신문 「당신의 당신」 부분―
방이 비좁아서 나는 밖에 있습니다 밖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상자를 만들어야 해요
재사용 종이는 거칠고 단단해서 반성에 알맞습니다
천장에 붙어 기웃거리는 가녀리고 얇은 나의 광대들
반성이 시작된 집은 무덤 냄새가 나는 요람 같아요
―S신문 「랜덤박스」 부분―
도대체 독자를 의식하며 쓴 글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아니, 소통을 거부한 글들처럼 보인다. 앞에 인용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시들의 대부분이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시도 새로워져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한다. 당연한 주장이다. 세상의 모든 풍물들이 새롭게 변해 가고 있는데 시만 음풍농월의 낭만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의 소재도 확장해야 하고 표현의 기법도 새롭게 개척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대 도시인의 고단한 삶이나 우울한 정서며 심리적 갈등도 얼마든지 시의 소재로 다룰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든 쓰고 싶은 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혼자 써서 혼자 읽고 말 글이라면 어떻게 쓰든 상관할 바 아니지만, 세상에 내놓을 작품이라면 독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이 이해되어야 하는데 어떤 작품들은 소통에는 관심이 없는, 아예 이해되기를 거부한 일방적 발언으로밖엔 볼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앞에 예시한 신춘시들도 비슷한 성향의 작품들로 보인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의 수준이 작자에 미치지 못해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없지 않으리라. 작품이 우주의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다든지 혹은 오묘한 깨달음의 경지를 읊은 시라면 보통 사람들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심오한 시상이라 할지라도 지각을 지닌 시인이라면 고등교육을 받은 보통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써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며 또한 시인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나는 ‘시는 배설이 아니라 출산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인데, 요즘의 신춘시들을 위시해서 젊은 시인들의 작품은 출산이라기보다는 배설처럼 보인다. 작품이 생명력을 가지고 오래 남기를 바란다면 감동을 담아야 한다. 시 쓰기를 울적한 감정의 해소를 위한 말장난―유희쯤으로 생각해서야 되겠는가?
왜 시가 이처럼 난삽하게 되고 말았는가? 거슬러 올라가면 잠재의식의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초현실주의, 비구상화의 경향을 지향하는 무의미의 시, 형식주의의 슬로건인 소위‘낯설게 하기’ 등의 영향도 적지 않으리라. 그러나 오늘날 한국시를 이렇게 끌고 가는 가장 가까운 요인은 ‘신춘문예’라는 제도의 잘못된 운영과 ‘심사위원’의 안이한 처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춘문예는 1920년대로부터 신문사가 주관해 온 등단 제도인데 문단이 열악했던 시대에는 한국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유능한 작가들을 많이 배출했고 문예지가 빈약했던 시절에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언론사가 관여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등단의 기회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주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신춘문예가 문학지망생에게 선망의 대상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으로 보인다. 내걸린 고료가 적지않다는 것과 당선자가 하루아침에 지상에 크게 보도됨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신춘문예 당선작은 수많은 문학지망생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그리고 당선작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작품을 쓰려는 풍조가 생겨난다. 때문에 그 다음해에 응모된 작품들은 전해의 당선작과 유사한 성향의 아류 작품들이 모인다. 심지어 몇 문창과에서는 신문사마다의 당선작 성향을 분석해서 학생들에게 응모작을 쓰도록 지도한다는 소문도 없지 않다.
지금의 신춘시들이 이러한 성향을 띄게 된 것은 언젠가 이러한 성향을 좋아한 심사위원이 있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데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응모작들의 대부분이 그러한 성향을 추종하게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도 그러한 성향의 작품들만 남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새로운 심사위원들이 설령 마음 내키지 않을지라도 그러한 성향의 작품을 또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을 것이리다.
그런데 ‘낯설게 한다’는 풍조가 여러 신문의 신춘문예뿐만 아니라 문단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범람하게 되다 보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독자들은 시를 아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까다롭고 이해하기 힘든 괴팍한 글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들은 많지만 시를 읽는 독자는 사라져 가는 아이로니컬한 이상한 풍토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진실로 시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추락한 시의 위의(威儀)를 다시 세우는 일밖에 없다. 우선 신문사가 감동성을 지닌 작품이 신춘문예 당선작이 되도록 배려해야 된다. 그래서 실추된‘시의 위의’를 다시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신문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신춘문예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예심에서부터 본심에 이르는 심사위원을 선정하는 문제도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당선작을 내지 않을 수도 있는 과감한 권한도 심사위원에게 부여해야 한다. 이럴 의지가 없는 신문사라면 신춘문예 제도를 아예 폐지하는 것이 차라리 문단을 돕는 일이다.
또한 심사위원들의 혁신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당선작이 문학지망생뿐만 아니라 문단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감안해서 신중히 당선작을 결정해야 한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호불호를 떠나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감동적인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 가능하면 한국 현대시의 정체성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나는 한국 현대시의 정체성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설정한 바 있다.
첫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 작품이어야 한다.
둘째,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어야 한다.
셋째, 새로움을 담고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넷째, 흥겹고 재미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다섯째,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작품이어야 한다.
여섯째, 시정신(선비정신)이 바탕이 된 작품이어야 한다.
시는 문학의 여러 장르 가운데서도 가장 순수하고 가장 정련된 고급의 문학양식이다. 다양한 실험과 새로움을 핑계로 하여 오늘의 시가 난삽한 글로 퇴락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감동성을 못 지닌 시는 생명이 없다. 감동성을 지닌 좋은 시가 되려면 앞에 제시한 6가지 항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리라고 본다.
한국 현대시가 이러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면 떠나간 시의 독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한국시가 세계 시단을 이끌어 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ㅡ『우리詩』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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