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국어 배우기쉽게 읽는 문법 용어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문법’이 의미하는 바를 매우 간략한 수준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 글에서는 독자를 위해 문법을 넓은 개념과 좁은 개념으로만 나누어 이분법으로 설명하였으나, 사실 문법은 좀 더 다층적이다. 앞으로 선보일 글들의 내용을 잘 이해하려면 문법 개념의 다층성을 이해하고 그와 관련된 용어를 알아 두는 것이 좋다.
문법 개념의 다층성을 설명하기 전에 ‘문법’이라는 말의 중의성을 알 필요가 있다. 문법은 언어에 내재한 규칙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 규칙을 이론화하여 기술해 놓은 설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뒤엣것을 ‘문법론’이라고 ‘-론(論)’을 붙여 용어를 구별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위의 (1)~(4)의 개념 설명에서 모두 맨 마지막에 ‘혹은 그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컨대 (4)는 ‘문장의 구성 원리 혹은 그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하면 된다.가장 범위가 넓은 (1)은 국어과 교육과정에서 말해 왔던 ‘문법’으로서 2015 교육과정부터는 ‘언어와 매체’에서 ‘언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글에 적용된 (1)을 그냥 ‘국어학’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첫 호에서 ‘결재(決裁)’와 ‘결제(決濟)’가 뜻이 다른 어휘라고 설명하는 것은 (1)에 해당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어휘의 의미 자체가 그런 것이어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일 뿐 언어의 규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어휘나 문장의 의미를 설명하는 분야를 ‘의미론’이라고 하는데, 더 나아가 말과 글의 상황 맥락이나 앞뒤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의 해석을 다루는 분야를 ‘화용론’이라고 한다. 의미론과 화용론은 (1)에는 포함되지만 (2)~(4)에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개 포함되지 않는다.(2)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의 ‘규칙’이 된다. 가령 각각 다른 형태소에 속해 있던 ‘ㄷ’과 ‘ㅣ’가 만나면 ‘디’가 아니라 ‘지’로 발음된다는 사실은 규칙이다. 더 작게는 ‘ㅂ’을 두 입술 사이에서 발음해야 하고 두 입술을 닫았다가 터뜨리면서 발음해야 한다는 개별 자모 발음법도 규칙이다.이처럼 발음과 관련한 모든 규칙을 설명하는 분야를 ‘음운론’이라고 한다. ‘음운’은 말소리의 최소 단위인데, 음운이 무엇인지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음운론이라는 용어만을 알아 두면 된다.언어의 규칙에는 단어의 형태 규칙도 있다. 단어의 형태 규칙이란 단어의 구조나 단어의 형성 원리를 말하는 것인데, 이를 설명하는 분야를 ‘형태론’이라고 한다. 단어를 이루는 기본 단위가 형태소임을 중시한 용어이다. 어근에 접사를 붙여 파생어를 만든다든가 어근과 어근을 결합하여 합성어를 만든다든가 하는 것 자체가 우리말의 규칙이다.또 규칙이 지니는 제약까지도 규칙의 일부이다. 예컨대 아무리 첫 글자만 모은 준말을 많이 쓴다고 해도 ‘축구 경기’를 ‘*축경’이라고는 하지 않는 제약이 있다. 표기 방식은 첫 호에서 ‘규범 문법’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말의 말소리를 한글 맞춤법에 따라 표기하는 방식을 교육받아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 모어 화자라도 교육을 받지 못하면 표기를 잘못하거나 아예 못할 수 있는데, 이는 표기 방식이 모어 화자의 당연한 지식이 아닌 배워야 아는 규범 문법이기 때문이다.문장의 구성 원리란 문장의 구조나 문장의 형성 원리를 말하는 것인데, 이를 설명하는 분야를 ‘통사론’이라고 한다. ‘통사(統辭)’란 거시적인 시각에서 말들을 엮는다는 뜻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완전한 문장 단위가 아니고 문장의 일부분만 다루어도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므로 통사론의 설명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낮잠의 효능’은 그 자체로 문장은 아니지만 ‘관형어+명사’의 구성으로서 통사론의 설명 대상이 된다.요약하면, 문법의 가장 좁은 개념은 (4), 곧 통사론이고, 그다음은 (3), 곧 형태론과 통사론을 합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문법학자들은 형태론과 통사론을 합한 개념을 가리켜 ‘문법론’이라고 한다. (2)는 더 폭넓은 개념이고 (1)은 가장 넓은 개념으로서 국어과 교육과정 외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글: 이선웅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