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상황의 시적 수용 문제
-이우디 「마네킹이 마네킹에게」(시집 『수식은 잊어요』 2020, 황금알)
-허영자 「재앙의 날에 2-코로나19」(계간 『문학청춘』 2020, 여름호)
-이병률 「면역」(계간 『문파』 2020, 여름호)
-권택명 「새로운 일상-마스크-코로나 바이러스19」(계간 『시산맥』 2020, 여름호)
-이영광 「지구살이」(계간 『시산맥』 2020, 여름호)
-김명은 「루벤 크루이드투인 식물원」(계간 『시와사람』 2020, 여름호)
-박종해 「2020년 봄-春來不似春」(계간 『시인시대』 2020, 여름호)
-나희덕 「어떤 부활절」(계간 『문학과 사회』 2020, 여름호)
-강인한 「밤새 안녕들 하신가요」(계간 『학산문학』 2020, 여름호)
-최병암 「2020봄」(계간 『문학과의식』 2020, 여름호)
-정숙 「호작질, 횡설수설하다ㅡ대구빙하기18」(웹진 『시인광장』 2020, 6월호)
-양현주 「사이프러스 나무와 해바라기의 상관관계」(웹진 『시인광장』 2020, 6월호)
-이영혜 「봄꽃은 왕관을 쓰고」(웹진 『시인광장』 2020, 6월호)
-김백겸 「「홍루몽紅樓夢」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웹진 『시인광장』 2020, 5월호)
-김기택 「자가격리」(웹진 『문장웹진』 2020, 5월호)
-정철훈 「오늘의 타전」(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0, 4월호)
-천성옥 「길고양이」(웹진 『시인광장』 2020, 4월호)
-오현정 「황금 마스크」(계간 『모:든 시』 2020, 봄호)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20년 7월호(2020, july)
1. 서론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는 2019년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감염 질환으로 2020년 상반기를 지나는 현재까지도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더 강력하게 범지구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하여 여러 시인이 시적 수용을 하였다. 시사적인 사안에 대한 시인들의 현실 감각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의 시적 수용이 긍정적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보인다. 이번 시인광장 포엠리뷰에서는 최근에 발표된 코로나19와 관련한 시들을 살펴보며 현실 세계의 시적 수용의 실태를 살펴보고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2. 코로나19 상황의 시적 수용과 시적 형상화의 양상
이우디의 「마네킹이 마네킹에게」는 마스크 쓴 인간의 모습이 ‘얼굴을 밀어버린’ 마네킹 같다고 보고 ‘당황한 코로나19/ 당신 안쪽에 쏟아버린 꽃처럼/ 검푸른 봄날’이라고 표현하며 소통 부재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인간을 마네킹으로 본 것이 새롭다. 마네킹 같은 인간과 코로나19라는 의외의 대비는 참신하다.
허영자의 「재앙의 날에 2-코로나19」는 ‘괴질이 사람을 가두니’라는 행으로 시작하여 ‘재앙의 그림자는 짙어도/ 세상 어딘가에는/ 화나게 눈부시게 빛 드는 곳 있으리’로 맺으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이 활동을 스스로 억제하자 자연이 활짝 피게 된다는 역발상의 시편이다. ‘하늘이 푸르러지고/ 바다가 맑아졌네’라는 시문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환경론자적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병률의 「면역」은 ‘신神은 인간에게 채찍 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라는 시문을 통해 마스크에 주목하여 ‘마스크 안에서는 동물의 냄새가 났다’라든지 ‘사람들은 자신이 쓴 마스크를 태우면서 혀를 씻었다’라는 시문을 통해 마스크와 관련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권택명의 「새로운 일상-마스크-코로나 바이러스19」는 ‘몇 주간 약국 순례로 사 모은 일만여 원어치의 마스크를/ 이만 오천여 원 운송료로 미국 사는 딸에게 발송했다’로 시작하여 ‘마스크 나라 시민들 머리 위로/ 때가 되어 다시 돌아온 봄 햇살과 때가 된 목련 꽃잎이/ 바이러스 따윈 관심 없다는 듯 홀가분히 내려앉고 있었다’로 끝맺으며 ‘바이러스로 인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일상이 뉴 노멀로 되어’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다만, ‘우체국 바깥 가로수에 걸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몸의 거리는 멀리 마음의 거리는 가까이’라는 현수막./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배웠는데’ 같은 지나친 산문화와 인용부호를 통한 직접 인용 문구는 다소 거슬린다.
이영광의 「지구살이」는 ‘날벼락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앓는 돌멩이로 죽어가도, 주인 없는 지구의/ 가축인 내 영혼, 누가 해방시킬 수 있으랴?’라며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도 해방되지 못하는 지구살이의 고단함을 토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자조적이고 우울한 시적 전개는 문단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사고의 피로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명은의 「루벤 크루이드투인 식물원」은 벨기에에서 제일 오래된 크루이드투인 식물원을 제목으로 삼아 세 살짜리 ‘서우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에요’로 시작하지만 ‘집에서 2킬로미터 밖으로는 나갈 수 없대요/ 경찰관 아저씨가 사람들을 지키고/ 놀이터 쇠문은 잠겨 있’는 답답한 상황을 이국땅에 사는 어린아이를 관찰하며 풀어가는 시다.
박종해의 「2020년 봄-春來不似春」은 봄이 왔건만 ‘나는 여태껏 겨울잠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림자를 잃은채 연금되어 있었지’라며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닌 것 같은 상황 속에 ‘마스크의 뜻을 독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개관하고 있다. 다만, ‘이후로는 잘난 척 나서며 싸다니지 말아라.’ 같은 훈계조의 시문이 거슬린다.
나희덕의 「어떤 부활절」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마침내 가장 두려운 신이 되었다’라는 의미심장한 시문으로 시작하며, ‘이번 부활절에는/ 아무도 부활하지 않았다’라는 아포리즘 같은 시문을 넣어 코로나19 상황에서 퇴색된 부활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질병과 관련된 일들을 종교 용어로 풀어간 점이 인상적이다.
강인한의 「밤새 안녕들 하신가요」는 ‘요즘 모두들 한 줄로 코를 꿰어 정신이 하나도 없소’로 시작하여 ‘살판 죽을판, 몽땅 떨이 펜데믹이니/ 어이쿠, 밤새 안녕들 하신가요?’로 끝맺으며 생경한 표현을 불사하며 신랄하게 코로나19 국면을 비판하고 있다.
최병암의 「2020봄」은 코로나19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 봄바람을 ‘서늘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며 ‘일선의 치료자들은 물려오는 병자들에 넋을 잃었다’라고 한탄하며, ‘근심과 공포에 휩싸인 구체제의 위대한 폭군들은/ 오늘도 마스크 뒤에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에탄올 향에 더러운 마음을 애써 희석하고 있구나’라며 자연의 파괴자이자 폭군인 인류에 대해 힐난하며 끝내고 있다. 다만, ‘인류를 위해 희생해온 자연’ 같은 개괄적이고 산문적인 진술이 거북하게 다가온다.
정숙의 「호작질, 횡설수설하다ㅡ대구빙하기18」에서는 ‘창 바깥은 이팝 꽃가루 흩날리는 오월/ 코로나19의 사십 일째/ 나는 그 무게에 가지 부러진 설해목/ 내 호작질은 자가 격리하느라/ 다시 횡설수설이다’라며 제목 그대로 호작질하듯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양현주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해바라기의 상관관계」는 ‘밤을 옭아매는 행위가 지금은 코로나19 봄’이라며 ‘우두커니 혼자 바람에 꽂혀 있’다면서 ‘사이프러스 단내에 취해 나무가 있는 집으로 꽃이 들어서요 그것은, 해바라기 꽃말로/ 당신을 부르는 행위’라고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이국적 서정을 기반으로 시를 전개하고 있다.
이영혜의 「봄꽃은 왕관을 쓰고」는 코로나의 원래 뜻이 왕관인 것에 착안하여 ‘산수유 꽃들까지도/ 바이러스 왕관을 쓰고 있었다/ 꽃구경 다녀간 사람들이 왕관에 감염되었다’라며 ‘모든 꽃놀이를 금지한다’는 잔인한 봄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김기택의 「자가격리」는 ‘한 지인이 코로나19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와 접촉하여/ 자가격리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라는 서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자가격리 상황을 전하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웃고 떠들 때에도 늘 혼자였기에/ 자가격리는 맞춘 듯 내 몸에 잘 맞’는다며 불행 중 긍정적인 면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생각만으로도 감염되는 신종 바이러스가 돌아다니고 있었다’라며 시를 부정적 시각으로 끝내고 있다.
정철훈의 「오늘의 타전」은 ‘오늘 우한으로부터/ 일가족 네 명의 사망이 타전되었다’라는 전언으로 시작하며 직접적인 사건을 통해 시를 전개한다. ‘무한대의 사망을 예고하는 타전이었다’라는 ‘지치고 불길한 봄’ 소식을 타전하고,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편지를/ 허공 속으로 띄워 보내고 싶다’라며 삶에 대한 열망을 노래하고 있다. 다만 ‘1인칭의 박멸을 보여주었고’나 ‘1인칭의 짝짓기마저 하나의 통계로/ 통제하는 국가’나 ‘1980년 광주에서도 숨을 참으면서/ 사랑을 했다’ 같은 표현이 왜 등장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천성옥의 「길고양이」는 ‘무관심은 공포를 번식하고 너는 아픈 현실이고 회오리바람이 창궐하는 오늘이야 끝나지 않은 재앙이야’라며 탄식하고 ‘숨죽여 떠다니는 코로나19 너는 잠식하는 대인기피증이야’라고 일갈하며 ‘편두통처럼 찌르는 안전안내문자들’에 시달리는 상황을 표현하고 ‘메르스를 잊기도 전에 네가 왔잖니/ 길고양이처럼’이라고 코로나19를 메르스와 연관을 지어 끝맺고 있다.
김백겸의 「「홍루몽紅樓夢」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가택연금에 은퇴백수가 중국 문학사의 부패를 견딘 「홍루몽」을 펼쳐보네’ 한 행이 코로나19 관련 시문인데, 나머지 시문이 지나치게 산문적이고 난삽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오현정의 「황금 마스크」에서는 ‘모임을 밀쳐두고 약속을 저버린 코로나 바이러스/ 수도권 초미세먼지 농도 121 마이크로그램/ 외출 시 마스크착용 문자가 뜰 때부터/ 매우 나쁨은 역시 질, 질이 문제였다’라고 하며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시를 전개하고, 마스크 착용을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에 빗대어 답답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우주의 폐 속에 검은 문신을 심는다’ 같은 생경한 비유와 ‘인간은 인생의 기준과 삶의 농도가 실시간 다르다’ 같은 산문적 진술은 아쉬움을 남긴다.
3. 코로나19 상황의 시적 수용의 문제
(1) 소재주의의 함정
무엇보다 코로나19를 소재로 시 창작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소재주의다. 소재가 중요하지만, 작품 완성도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완성도보다 소재에 집중하게 되면 당장은 흥미를 끌고,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겠지만 감동은 반비례할 위험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무엇을’ 쓰느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이다. 미학적 완성이 담보되지 않는 시사적 소재의 시편은 여타 행사시와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하고 울림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시 중에는 시적 개성이 모자란 나머지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진 시편이 더러 보인다.
직접적으로 ‘코로나’라는 낱말이 나오지 않더라도 시적 정황상 짐작 가능하다면 굳이 그 낱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묘사와 서사를 적절히 섞어서 풀어내야 좋은 시가 된다.
또한, 코로나19에 관한 시라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코로나19의 범유행 사태보다 더 깊숙이 인간에 대한 통찰이 들어간다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2) 상상력의 빈곤
코로나19 상황의 시적 수용의 문제는 있는 그대로 상황을 재현하는 데 있다. 시인의 경험적 자아와 시적 자아 사이의 거리 조정이 잘되지 않으면 소재에 대한 심리적 거리 두기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문학에서 상상력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준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은 바로 시가 되지 못한다. 구체적 체험이나 관찰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적 수용은 비유와 상징 같은 시적 장치를 전제로 한다. 시인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가 어떻게 산문과 변별될 수 있는가.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감염자와 사망자를 올림픽 메달 집계하듯 자극적으로 보도되고, 감염자의 동선이 공개되고, 익명이지만 번호로 불리는 상황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고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승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3) 시적 향기의 부족
좋은 시를 읽으면 울림이 온다. 전율이든 즐거움이든 위트와 유머든 비장함이든 일정한 정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울림이 있는데, 최근 발표된 코로나19 관련 시편들은 대부분 음울하고 건조하고 삭막한 현실에 즉물적으로 반응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하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산문화된 경향과 생경한 전문 용어가 여과 없이 시에 등장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시를 읽고 나서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결단코 좋은 시가 아니다. 기성 시인의 노련함과 낯익음은 외관상 잘 구성된 시의 몸을 갖게 하지만, 시적 향기가 그에 걸맞게 나는지는 의문이다. 익숙한 소재일수록 어떻게 다르게 써야 하는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시인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통해 코로나19를 넘어서는 사유를 보여주어야 울림이 있지 않을까.
4. 결론
최근 발표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상황의 시적 수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나름대로 시적 성취를 이룬 수작도 있었으나, 우려한 대로 단순한 현실 재현의 시편도 보였다. 시사적이고 민감한 사안일수록 소재주의의 함정을 비켜나가야 한다. 독특한 시각과 개성적 태도로 소재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시 쓰기에서 지양해야 할 구태일 것이다. ‘이 정도로 쓰면 됐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적 성장은 멈추게 되어 있다. 시적 향기가 없는 시문은 울림이 적을 수밖에 없다.
적당히 타협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밀고 나가야 시적 성취를 맛볼 수 있다.
P 박진형의 포엠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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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형(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학사, 불어불문학과 석사, 불어교육과 박사과정 수료. 1989년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소설 당선. 2016년 《시에》로 시부문 등단. 201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용인문학회 편집위원, Volume 동인 회장, 시에문학회 부회장, 시란 동인.
[출처] 시인광장 포엠리뷰【422】박진형의 포엠리뷰[1]코로나19 상황의 시적 수용 문제- 박진형(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20년 7월호 ㅡ통호 제135호ㅡ |작성자 웹진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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