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우리 말♠문학 자료♠작가 대담

말과 글이 같아야 한다/이봉수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12. 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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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같아야 한다.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시조를 쓰는 시조시인은 물론 심사위원, 평론가, 교수, 등단희망자 및 학생에 이르기까지 “시조는 정형시”라고 한다.

“시조는 정말 정형시인가?” 극히 상식적이고 확실한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묻는다. 왜?

많은 시조인들이 말은 바로 하면서 글은 비뚤게 쓰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시조는 3.4조를 기본음보로 하는 3장 6구 12음보의 정형시”라고 하면서 손으로는 기본음보율을 무시하거나, 3장 6구 12음보를 파괴하거나, 수의 구별을 없애거나, 자유시의 흉내를 내는 등 일일이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정형시를 쓴다. 말(주장)과 글(작품)이 다르다. 원로, 중견시인일수록 더 심하다.

이들은 시조는 정형시이지만 자수에 관계없이 표현이 자유로워야 한다느니, 시조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느니, 지금까지 시조가 큰 발전을 해 왔다느니 하는 등 어설픈 논리와 허황된 주장을 펴면서 태연하게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시조를 쓰고, 평하고, 심사하고, 시상해 왔다.

차라리 시조는 정형시가 아니라고 하든지 정형시라고 하고 싶으면 정형을 지키든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말과 글이 같아야 한다.

 

시조창작계도 문제이지만 비평계도 궤도를 이탈하고 말과 글이 다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개인 시조집의 평설은 청탁을 한 저자의 부실을 차마 지적할 수 없어 호평만 하게 됨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월간지, 계간지등에서 평을 하는 평자들마저 호평하는 글만을 써 왔다. 제3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고 정격시조인지 아닌지, 잘된 글인지 잘 못된 글인지, 문학적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내어 평하기는커녕, 작자의 이름과 연륜만 보고 미리 경중을 매겨 놓고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찬양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작품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평(추겨올리기)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시조단에 정격시조는 드물고 사이비시조가 범람한다. [惡貨가 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이 시조단을 지배하고 있다.

정형파괴의 사이비시조일수록 시적인 문학성은 떨어지고 산문에 가까운 작품이 많음을 발견한다.

 

이하 08년 3/4분기 시조단의 실태를 점검해 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08.7월호

 

7월호에 자유시 40편 시조 7편이 실렸다.

시조 7편중 김석철의 [구름], 정향아의 [매창의 노래] 등 2편은 정격시조이고, 장지성의 [거풍기(擧風記)], 김영재의 [서우승 생각], 강세화의 [아이], 김선영의 [고향무정], 辛東益의 [쇠비] 등 5편은 파형 또는 변형된 사이비시조(참조:새시대시조 08가을호 P135)이다.

 

구름

김석철

 

형상을/ 짓고 헐고/

덧없는/ 일이로다/

 

괘념치/ 말아야지/

제 알아/ 하는 일을/

 

뭐래도/

세월은 간다/

시시비비 싣고서./

 

 

사이비시조 범람시대에 보기 드문 정격시조이다. 샛별같이 빛나는 작품이다.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시시비비(是是非非) 등 온갖 모습으로 명멸하는 인간사(人間事)를 구름으로 이미지화하여 세월에 실려 가게 되어 있다고 하며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시적 화자의 의연한 태도를 본다.

시조의 형식은 물론 내용면에서도 흠 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서우승 생각

김영재

 

심야버스를/ 타고/ 상경을/ 서둘던 밤/

친구는/ 터미널에/ 배웅 오지/ 않았다/

깊은 잠/ 수렁에 들어/ ‘카메라 탐방’/ 하나 보다/

 

한 생을/ 넉살 좋게/ 유행가를/ 부르다가/

통영/ 앞바다를/ 술잔에/ 기울이다가/

미륵섬/ 바람을 타고/ 봄나들이/ 갔는갑다./

 

* 서우승(1946~2008): 시인, 미륵섬은 그의 출생지.

 

 

이 시는 일견 3장 6구를 갖춘 시조로 보이나 일부 3.4조형이 깨져(밑줄 친 곳) 이빨이 빠진 파형시조이다. 정형시는 완전한 정형을 갖추었을 때만 정형시로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용은 시인의 일기장에나 있을 법한 개인적 경험으로 채워져 있다. 시는 작품 안에 있는 시적화자의 진술 또는 묘사이지 작품 밖에 있는 시인의 사생활이나 일기가 아니다. 이 시는 개인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어 독자에게 별다른 감명을 주지 못한다.

이 시에서 현대시의 특징인 메타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으며, 본문에는 작자만 아는 사실들(친구가 심야에도 배웅 나왔어야 할 정도로 절친했고, 술을 좋아했고, 카메라탐방을 즐겼고, 작고했다는 등)이 숨겨져 있다. 따라서 시적 논리가 단절되어 읽기가 불편하다.

[하나 보다]는 [했나 보다]가 되어야 시제(時制)가 일치되고 의미전달도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2) 08.8월호

 

8월호에는 자유시 50편 시조 9편이 실렸다.

조성국의 [님에게 드리는 노래]와 윤석환의 [치유]는 평시조 4수로 구성된 장문의 연시조이지만, 한 음보도 3.4조를 일탈함이 없이 정형을 갖춘 정격시조이다. 철저하게 정형을 지키면 표현이 어렵다는 허황된 주장을 시원스럽게 때려 주고 있다.

이에 비하여 윤금초의 [비양도 물길], 박영교의 [‘민들레의 영토’에 앉아], 李一香의 [억새], 박철구의 [신비로운 우리독도], 甘忠孝의 [요세미티 깊은 골에], 권희로의 [도토리 6형제], 송귀섭의 [반려자] 등 7편은 파형 또는 변형된 사이비시조이다.

 

 

비양도 물길

윤금초

 

내 나라/ 바닷속엔/ 요술 할망/ 숨어 있는갑다./

개흙 묻은 손/ 잠그면/ 쪽물 이내/ 우러날 듯/

뭍에서/ 멀어질수록/ 깊어지는/ 비양도* 물빛/.

 

갓물질*/ 테왁* 너머/ 숨비 소리,/ 호오이 소리/

까까머리/ 동자승처럼/ 볼록 솟은/ 그 오름의/

바람은/ 긴긴 시간을/ 바당* 삼킨/ 섬을 짓는다./

 

정게호미*/ 거머쥐고,/ 빗창* 들어/ 눈 겨누고/

‘아방 어망/ 고기나 줍지,/ 열 길 물 속/ 죽어 쓰겠니’*/

이여사, 이여,/ 이여사*./ 뱃물질*도/ 숨 겨운데./

 

오몽헤질/ 때까졍/ 기영 살아*,/ 살아야 한다./

한바다/ 일군 해녀들/ 거기 그렇게/ 몸 뉘이고/

물미는/ 신생의 아침을/ 살아야주,/ 살아야주./

 

 

* 비양도 : (제주) 우도 동쪽 끝에 자리해 있는 작은 섬.

* 갓물질 : 해녀들이 바다에서 물질(작업)하는 일.

* 테왁 : 해녀들이 물질할 때 바다 위에 띄워 놓는 뒤웅박.

* 바당 : 바다의 제주도 말.

* 정게호미 : 해조류를 베는 기구.

* 빗창 : 전복 등을 캐는 길쭉한 쇠붙이.

* ‘아방 어망.....’ : 제주 민요의 한 대목. ‘아방 어망’은 아버지 어머니.

* 이여사, 이여, 이여사 : 뱃노래의 후렴.

* 뱃물질 : 해녀 열댓 명이 배를 타고 나가 물질하는 일.

* 오몽헤질 때까졍 기영 살아야주 : 제주 방언.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시조의 형식면을 보면 이 작품은 3장 6구는 갖추었지만 시조음보율을 상실한 것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시조로서의 모양은 절반이 변형된 사이비시조이다.

[이여사, 이여,/ 이여사]는 시조 종장을 크게 벗어났는데 [이여사,/ 이여, 이여사]로 불리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영치기 영차/영치기]는 있어도 [영치기/영차 영치기]는 없는 것과 같다. 쉼표(,)에 맞추어 [이여사,/이여,/이여사]로 읽어도 시조종장이 아니고 억지로 [이여이여사]로 읽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쉼표를 찍어 놓았다. 종장 첫마디 3의 글자 수만 맞으면 정형이 다 된 줄 아는 것은 큰 착각이다.

무릇 시(詩)는 모국어를 쓰는 대다수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쓰여 진 운문일진대 극소수만 읽을 수 있는 사투리, 은어, 고어 또는 사장된 단어를 남용함은 대다수 독자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심한 사투리, 보통어가 아닌 어려운 낱말, 또는 사전의 깊숙한 구석에서 거미줄이 주렁주렁한 낱말을 찾아내어 자기만 아는 체 하며 즐겨 쓰고, 주(註)를 달아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오만(傲慢)의 극치이다(참조:<새시대시조> 07겨울호 P79). 주를 달지 않고도 쉽게 술 술 읽을 수 있도록 친절을 베푸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사투리사전으로 착각할 정도로 주를 위주로 쓴 작품이다. 주에만 눈이 간다. 주를 읽지 않고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독자가 과연 몇 %나 될까? 주를 읽어도 [숨비 소리], [호오이 소리], [물미는] 등 단어까지 아는 사람은 몇 %나 될까?

 

 

‘민들레의 영토’에 앉아

박영교

1.

가깝게/ 있어도/ 멀리 느껴지는/ 사람

먼 곳에/ 앉아 있어도/ 아주 가깝게/ 있는 이

사람 맘/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아무리 제어해도/ 안 된다./

 

2.

넌 나에게/ 산 첩첩/ 골 깊은/ 사람인가/

골 푸른/ 산 메아리/ 진한 물 소리/ 같은 사람

살면서/

어둠 헤치고/

산골 밝은/ 목소리/

 

3.

겨울이라고/ 내 마음엔/ 흰눈 얹어/ 자리 잡을까/

들길에/ 하루 종일/ 푸른 빛살/ 나르더니/

풍경화/

그늘을 지우며/

뚝뚝 녹아/ 듣는 낙수/

 

4.

부석사 길/ 빙판 위를/ 오늘/ 손님 태우고 간다/

석축이며/ 석등 불상,/ 백팔계단/ 오르는 번뇌/

발자국/

가득히 채우는/

무량수전/ 무거운 와가(瓦家)/

 

 

이 작품 역시 시조 음보율을 무시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대표적인 사이비시조이다. 1번글 종장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는 너무 길어 종장 둘째 마디로 보기 어렵다.

내용을 세밀히 살펴보면 이 시는 4편의 작은 시를 하나로 묶어 진열한 형태이다. 번호를 붙인 각각의 작은 시는 서로 연관성이 없고 제목과 어울리는 시는 한 편도 없다. ‘민들레의 영토’는 따옴표로 묶음으로서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가 되어 작자만이 아는 책의 이름이거나 지명인 것으로 보인다. 작자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시의 내용을 알 수 없다.

[‘민들레의 영토’에 앉아]라는 제목은 얼핏 보기에는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고도의 비유를 동원한 제목으로 보이지만 따옴표 안을 고유명사로 읽을 때는 작자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독자는 이해할 수 없고, 보통명사로 읽더라도 본문의 내용과 거리가 멀어 민들레의 영토가 무엇인지 독자는 이해 할 수 없다. [비유는...그에 곁들여 새로운 관념이나 말을 이용함으로서...제 3의 국면을 이해,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김용직<비유의 이해>:김병택편저<현대시론의 새로운 이해>2004년판P94). 그러나 이 작품의 제목은 본문의 내용과 너무 거리가 멀어 제 3의 국면을 이해할 수 없다. 한마디로 비유의 거리조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2. 3. 4번 글의 종장에 해당하는 [목소리], [낙수] 및 [와가]는 해당 시편의 초장과 중장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딴 살림을 차리고 있다. 따라서 시조 종장의 특징이자 강점인 마무리(轉.結)효과를 얻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하는 형상이다

[산골 밝은 목소리]는 ‘산골을 밝히는 목소리’인지, ‘산골에 있는 밝은 목소리’인지 알 수 없다. [목소리가 산골 밝다]라는 말이 있는가? 이 말은 귀신이나 아는 언어이다.

 

 

(3) 08.9월호

 

9월호에는 자유시 46편에 시조 9편이 실렸지만, 시조로서 수, 장의 구별이 뚜렷하고 3장 6구 12음보를 제대로 갖춘 정격시조는 송양숙의 [옥상에도 꽃이 핀다] 1수에 불과하다.

유재영의 [가을 이순(耳順)], 이진숙의 [낙엽을 태우며] 등 2편은 정형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 없이 수의 구별을 없애고 6행시 또는 6연시로 배행함으로서 정격시조의 자격을 잃었다. 또한 김송배의 [한여름에], 변인숙의 [민들레] 등 2수는 아깝게도 1음보씩 파형하였고 김 전의 [고향]은 1음보 파형에 수의 구별을 없앤 변형을 범하였다.

홍성란의 [허물], 이기동의 [산가(山家)에 살며], 최연근의 [노을 깃발] 등 3편은 시조 음보율을 크게 벗어나 시조 고유의 모양이 변한 변형시조가 되었다.

 

 

허물

홍성란

 

/

벗어두고/

간 데 없이 간/ 사내처럼/

 

영산홍/ 꽃 다 진/ 잎가지나/ 붙들고/

 

목소리/

간 데 없는 매미/

비어 있는/ 집 한 채/

 

마음을/ 넘겨버리고/ 울도 못하는/ 저 허깨비/

 

잃은 건/ 노래 아니라/ 너에게 가는/ 날개여서/

 

일평생/ 몸을 바수며/ 너는 네가/ 그립다/

 

 

2수(首)의 초,중장에서 시조정형을 벗어난 음보가 절반이다. 수의 구별을 없애고 자유시처럼 연,행을 배열한 변형시조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시적화자가 몸이 빠져 나간 매미허물에 대하여 진술함으로서 다른 시들처럼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시의 둘째수(수의 구별을 없애버려 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 초장까지는 시를 읽는 독자가 청자이지만, 중장에서는 갑자기 매미가 청자가 되었고 종장에서는 매미허물이 청자가 됨으로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기형의 시가 되었다. 중장의 ‘너’는 매미이고, 종장의 ‘너’는 매미허물, ‘네’는 매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그립다]는 [매미허물 너는 네 자신이 그립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어 매우 부적절한 시구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간데 없다]는 시어를 반복함으로서 짜증을 나게 하고, [울지도 못하는]은 [울도 못하는]으로, [노래가 아니라]는 [노래 아니라]로 표기함으로서 시구가 매끄럽지 못해 읽고 나면 돌을 삼킨 기분이다.

매미허물은 흔히 한 여름 큰 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키가 1m미만인 영산홍의 가느다란 가지에 붙어 있다고 하니 그것도 이상하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08가을호>

 

한국문인협회에서 발간하는 계간지인 [계절문학] 08.가을호에는 자유시 28편과 시조7편이 실렸다. [계절문학]은 [월간문학]과 같이 원로 또는 중견시인들의 작품만 게재하고 있어 현대시조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류태환의 [산촌의 아침], 최상호의 [삼짇날] 등 2편은 정격시조이다. 하영필의 [남산(南山)], 여영자의 [신호등], 장점환의 [한겨울 동치밋국] 등 3편은 한두 군데 깨진 파형시조이고, 박병순의 [망촛대], 전연욱의 [작별], 등 2편은 정형이 다 깨진 자유시 또는 변형시조이다.

시작과정에서 부득이하여 한두 군데 파형된 경우와 아예 정형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쓴 변형시조는 크게 다르다. “과실범이냐?” “고의범이냐?” 의 차이이다.

 

 

망촛대

박병순

 

수실모양/ 꽃잎으로/ 촘촘한/ 노란 꽃술/ 피어 올려/

발돋움 해/ 모여서서/ 촛불 밝힌/ 환한 웃음.....

달밤에 핀/ 메밀꽃밭보다/ 더욱/ 싱그러운/ 잔치여!/

 

 

짧은 평시조 단수라고 할지 모르지만 3.4조 음보 또는 3장 6구를 무시하고 쓴 자유시이다.

초장은 4.4.3.4.4로 5음보가 되었고 종장도 5음보에다 첫 음보 3자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다. [달밤에/ 핀메밀꽃보다]로 읽을 수는 없지 않은가? 3행이라는 사실만으로 시조라 할 것이 아니라 연.행을 다시 잘 배열하면 그런대로 읽을 만한 자유시가 될 것 같다.

내용도 망촛대 라는 식물의 이름을 풀이하여 “촛불을 밝혔다”고 표현한 평범한 시상이다. 종장의 [~보다]와 [더욱]은 의미의 중첩으로 [더욱]은 생략하여도 전혀 무리가 없고 오히려 시조정형에 부합하는데 왜 굳이 혹을 붙여 시어를 남용하고 정형을 깨는지 알 수가 없다. ‘달밤에 핀 메밀꽃밭’? 메밀꽃밭도 피고 지는 것인지 헷갈린다.

 

 

작별

전연욱

 

저녁노을/ 아름다움은/ 지는 목숨/ 붉은 절규로다/

단식으론/ 쉬 끊기잖는/ 질긴 목숨에/ 부대끼며/

더 이상/ 투석은 않겠다고/ 미소짓는/ 오라버니/

 

병실/ 일인용 침대 밑에/ 가지런히/ 벗어 둔 신발/

걸어갈 수/ 없기에/ 돌아갈 일/ 없기에/

가족도/ 찾아가지않을/ 아직은 버리지않는/ 신발/

 

모두가/ 노인 환자/ 생기 잃은/ 삶의 종말/

산송장을/ 쓰다듬고/ 소리없이/ 우는 누이/

빈 저울/ 눈금이 흔들리는/ 애잔한/ 사랑의 무게/

 

추모 :

끝내 뜻하신대로 장렬하게 가셨구려

그땐 내 꿈 속에 나타나 먼 질 같이 가자 하시더니

한 달 간 만난 동생 귀국하자 그 맑은 눈을 감으셨나요

 

 

3.4조 음보율은 안 지켜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쓴 시이다. 얼핏 보기에 3장 6구를 갖추었지만 위 [망촛대]와 같이 연.행을 다시 배열하여 자유시라고 했더라면 훨씬 자연스러운 시가 되었을 것 같다. 시조도 아니고 자유시도 아닌 엉거주춤한 제3의 장르이다.

이 시는 임종이 가까운 오라버니를 보며 쓴 일기를 시로 재구성한 것이다. [추모]를 달아 시인의 일기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애절하고 비통함이야 말 할 수 없지만 시는 시인의 일기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독자와 공유하는 경험이 아닌 시인의 개인적 사정을 기술하면 보편성을 잃은 ‘일기’가 된다.

 

 

(2) [새시대시조]<08가을호>

 

여기에도 말과 글이 다른 시조시인이 많다. 수많은 변형작품 중 특히 심한 몇 편을 적어 본다.

 

구름(홍오선)

조물락/ 조물락// 꽃을/ 만들었다가// // 또다시/ 조물락// !/ 산도 만들었네// // 이번엔//누나 얼굴, 내얼굴// 정말로/ 요술쟁인가 봐.//

 

 

먹이사슬(최숙영)

새끼/ 수리부엉이가// 첫 사냥을/나섰다// // 화알짝/ 날개 펼치고// 냅다/ 낚아챘다// // 해냈지?// 요놈 생쥐야// / 내가 누군 줄 알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김산)

침통한/여한을/대신/클라리넷이/울어준다//허황된/ 아내는/오랜 병석에/가난을/원망하며//무시로/짓눌려오는/아픈 설음/참아낸다// //

숙명처럼/ 찾아온/ 예고된/ 진혼곡(鎭魂曲)을/ 작곡// 거액의/ 사례는/ 죽음을 기다리는/ 조곡(弔哭)// 기회는/ 머물다 가는/ 행운의/ 여신인가// //

저승/가는 곳은/ 외롭고 먼길이지만// 그곳이/ 영혼의/ 안식처임을/ 깨달아// 오늘도/ 제2악장을/ 심중에/ 새겨듣는다//

 

 

외로움(유상용)

(중장) 적막은/ 내 몸을 감싸는데// 참새도/ 와 주지 않는다//

 

선풍기를 돌리면서(원용문)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습성(習性)처럼// 더우면/ 끌어안고/ 서늘하면/ 내던진다// 흥부는/ 바보가 아니라/ 선한/ 인간이었다// //

싫다고/ 내칠 때도/ 불평/ 한 마디 없고// 좋다고/ 가까이 하면/ 있는 충성/ 다한다// 날씨가/ 푹푹 찔 때는/ 내가 먼저/ 아양떤다// //

돌아라/ 돌아라/ 팽이처럼/ 돌아봐라// 이 세상/ 돌아가는 게/ 미친 듯이/ 돌아간다// 아마도/ 너를 닮아서/ 촛불 시위/ 하나보다./

 

한계령 풀꽃(전학춘)

(둘째 수) 높은 땅/ 주춧돌 놓아// 하늘과/ 가까우면// 뻑뻑한/ 고개 꺼내어// 올려다보는/ 마른 풀들// 부릅뜬/ 불꽃 시선을/ 침묵으로/ 견디며//

외 4수

 

마지막 발령(나순옥)

(넷째 수) 방학마다/ 찾아가야 할/ 부모님/ 주소가 달라져// 대한민국/ 곳곳 사투리/ 원망처럼/ 쏟아내면서도// 아버님/ 사명감 앞에서는/ 숙연해지던/ 친구//

외 5수

 

 

이와 같은 변형시조의 홍수에 휩쓸려 외로이 떠내려가는 고고한 연꽃을 2편 건진다. 시조의 형식이 맞고 관념을 형상화한 수작들이다.

 

목련꽃 필 때

윤성의

 

두툼한 외투 깃을

요리조리 비집고

 

햇살 한 줌 쪼르르

내려와 앉더니만

 

치마폭 여며 잡은 여인

해맑게 웃고 있다.

 

 

 

물장구치는 아이를 보니

申大生

 

뙤약볕을 물에 담가// 바람 불러 식히면서//

젖었다가 말렸다가// 까매지는 얼굴 보니//

유년이 홀랑 벗은 채// 걱정 잊고 신이 났다//

 

구름을 불러다가// 물 위에 띄워 놓고//

물방울 털어내며// 웃는 소리 따라서//

시름을 물장구치니// 바람보다 시원하다//

 

 

 

(3) [시조문학]<08가을호>

 

시조 정형에 충실하면서 산뜻하게 형상화된 작품은 1편도 찾아 볼 수 없고, 변형된 사이비시조만 잡초같이 무성하다.

 

가을날의 시(詩)외 4편(이정환)

1. 햇살/ 한 줌으로도/ 따뜻할 수가 / 있다// 벼이삭/ 한 다발로도/ 넉넉해질 수/ 있다// 하늘이/ 깊을 대로 깊어/ 우련/ 멀어진 날에// //

2. 편지 쓰기에/ 참 좋은/ 단풍빛/ 날들이다// 구름도/ 읽으려하고/ 바람도/ 들으려하는//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받아 적은/ 사연들// //

3. 읽지 않아도/ 그대,/ 이미 다/ 헤아리리// 한 포기/ 코스모스가/ 언덕을/ 흔들 때// 풀무치/ 날개에 실려/ 날아오르는 /말들을// //

4. 억새풀이/ 함께 모여/ 바람을 / 불러 보잔다// 까마귀들/ 벼랑 끝에서/ 목놓아/ 울어 보잔다// 솔잎을/ 씹으며 걷는/ 머리 희끗한/ 이에게// //

5. 말을/ 아껴도 될 날이/ 연이어지고/ 있다.// 산이/ 눈짓하고/ 들이/ 어우러져 웃는데// 하늘은/ 카랑카랑하여/서늘히/ 덮고 있다.//

 

장애인 주간에(정순량)

내일 일은/ 알 수 없어// 우리는/ 잠재적 장애인// // 오늘/ 비장애인임을// 마음 깊이/ 감사하고// // 더불어/ 살아가야할// 장애인은/ 내 친구.// //

장애는 / 조금 불편할 뿐// 우리와/ 다를 바 없는데// // 측은하게/ 바라보는// 그 편견이/ 더 괴롭다는// // 장애인/ 맘 편하게 살아갈// 그런 환경/ 아쉽다.// //

 

고추잠자리 외 4편(고정국)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도// 한국 시월은// 맵지 않았네// // 맨발로/ 종일을 걸어도// 시월 들길엔// 아프지 않았네// // 차 시간/ 일분을 남기고// 울지 않던// 그대가// 미웠네.// //

물 외 4편(권갑하)

(첫째수) 밤새/ 어둠은/ 저리/ 아린 눈물/ 맺어 놓아// 흘러/ 강물이 되고/ 망망의/ 바다가 되고// 긑내는 / 기막힌 절망/ 저 하늘/ 그리움이 되고//

외 4수

 

폼페이,정적(靜寂) 앞에서 외 4편(권혁모)

(첫째 수) 어쩌다/ 노여움이 된/ 여긴/ 신들의 영역// 목숨이/ 허무라 한다면/ 송이송이/ 저 목화꽃// 일월도/ 멎은 전(戰)터에/ 옷고름 풀고/ 흐르네.//

외 2수

 

내 차례 외 4편(박종대)

왔다// 네./ 접니다// 네./ 틀림없습니다// // 어째서/ 불러만 놓고는// // 내가// 빈손이 아니었구먼// // 틀렸다//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내려놓질/ 못허고.//

 

동짓달 화악산 외 3편(이근구)

(첫째 수)동짓달/ 화악능선// 빗살에 걸린/ 수줍은 낮달// // 각선미대회/ 하는// 자작나무군락/ 의연한데// // 피붙이// 북을 살피는// 아린 가슴/ 망루여// //

외 1수

 

어떻게 오갈까요? (노창수)

(첫째 수) 보채는/ 아이들을/ 도심적응훈련에/ 보냅니다// 우체국/ 찾아가는 것/ 약국 가고/ 신호 보는 법// 연둣빛/ 다독인 표정/ 신호등에/ 걸릴까요//

외 2수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08.7월 (심사위원: 박기섭, 이지엽)

 

<장원>

물레의 기억 (배경희)

유리창 밖/ 감꽃이/ 길게/ 떨어진다//붉게 익은/ 옹기마다/ 햇빛이/ 꿈틀거리고//

아버지/ 가슴언저리/ 흙 울음이/ 밀려온다//세상 밖/ 누구든지/ 찾아오는 이/ 없어도//

아버지는/ 꽃을 돌렸고/ 바람을/ 돌렸다//내 안의/ 물레 하나가/ 오늘도/ 길게 돌아간다//

 

* 필자의 평: 많은 부분 시조음보율을 벗어나고 수의 구별을 없애버린 6행의 자유시이다.

 

 

<차상>

여름날의 소묘 (김병문)

날 세운/ 볕살마저/ 기승을/ 떠는 한낮// 닫힌 교회/ 계단 아래/ 쭈그려/ 앉아 있는,//

로댕의/ 조각상 닮은/ 굽은 노송을/ 보았다.//휘우듬히/ 세워놓은/ 옹색한/ 손수레엔//

알량한/ 폐춤 몇점/ 물목 잡아/ 실어놓고//노동에/ 겨운 나날을/ 목줄인 양/ 잡고 있다.// 한때 푸른/ 그늘을/ 입성 좋이/ 펼쳐놓고// 이파리마다/ 각인된/ 새들의/ 은빛 언어를//잔잔한/ 그 떨림으로/ 나볏이/ 풀곤 했겠지.//솔가리도/ 다 이울고/ 잎갈이도/ 할 것 없는,// 버캐 낀/ 행색을 털고/ 부단히/ 굽혀간다.//말없이/ 에도는 길목,/ 마른 향기/ 날리면서...//

 

* 필자의 평: 많은 부분 시조음보율을 벗어나고 수의 구별을 없애버린 12행의 자유시이다.

[휘우듬히],[폐춤],[나볏이],[버캐]등 시어는 사전을 찾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장된 단어로 위 [비양도 물길](윤금초)과 같은 맥락이다.

 

 

<차하>

나무의 병문안(이진성)

백병원/ 702호/ 고로쇠나무/ 누워있다// 퍼즐처럼/ 갈라지는/ 고동빛 욕창/ 온 몸 위로// 종양이/ 버섯 자라듯/ 주렁주렁/ 달렸다// 병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이제 없고// 봄기운이/ 창문 한 켠/ 빗금을/ 두드린다// 꽃송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계절이다// 집안을/ 지탱하던/ 굳어진/ 몸 속에는// 먹먹한/ 물관만이/ 서서히/ 말라간다//

나무의/ 뿌리 밑에서/ 떡잎들이/ 자란다// 두꺼워진/ 링거 방울/ 아버지의/ 먹먹해진//

물관에/어디까지/ 차오르고/ 있는 걸까// 창 밖에/ 봄바람만이/ 병문안을/ 오고 간다//

 

* 필자의 평: 한두 군데 시조음보율이 깨진 유사시조라고 볼 수도 있으나 수의 구별 을 없애버린 12행의 자유시이다.

 

 

(2) 08.8월 (심사위원: 박기섭, 이지엽)

 

<장원>

집에 가는 길 (김정원)

횡성을 지나/ 잘못된/ 기억 속에/ 갇혔다// 몇 시간째/ 전조등 불빛/ 밤을 밀고/ 나갔지만// 어둠은/ 여태/ 길 하나/ 꺼내놓지/ 못한다// //

적막을/ 매만지며/ 피어나는/ 달맞이꽃// 폭염처럼/ 칙칙/ 몸에 감기는/ 지난 시절들//

표지판/ 환한 생각이/ 바람인 듯/ 수런거린다// //

또다시/ 더듬거리며/ 다른 길도/ 가겠지만//무수한/ 남은 이야기/ 선분으로/ 그어질까// 열리듯/ 집에 가는 길/ 달빛 가득/ 찧어본다//

 

* 필자의 평: 수의 구별은 있으나 많은 부분 시조음보율을 벗어난 변형시조이다.

 

 

<차상>

빗방울 꿈꾸는 세상 (서문기)

바다를/ 꿈꾸는 빗방울/ 저기 저/ 매달렸다// 이곳도/ 저곳에도/ 부풀어/ 산통이다//

바닥에/ 추락하면서/ 죽는 순간/ 태어난다.// //

흐르고/ 흐르면서/ 길 찾아/ 떠나간다// 가다가/ 부딪치면/돌아서/ 갈 것이고//

막히면/ 함께 힘 모아/ 넘어서/ 갈 것이다.// //

좁은 길/ 험한 둘레/ 헤치고/ 가다 보면// 펼쳐진/ 무지개도/ 만나게/ 될 것이고//

북극성,/ 환한 눈물도/ 더러/ 동행할 것이다.//

 

* 필자의 평: 수의 구별은 있으나 한두 군데 시조음보율을 벗어난 파형시조이다.

 

 

<차하>

빗 (윤형진)

얼레빗//

아무리/ 야무지고/ 빈틈이/ 없다 해도// 찰지고/ 단단한 알갱이/ 그대로/ 놔둔 채//꺼칠한/ 겉껍데기만/ 쇠스랑으로/ 걷어 낸다//

//

면빗//

새 옷을/ 지어놓고/ 다림질을/ 해도//구석진/ 모서리는/ 인두/ 몫이다//

생색도/ 나지 않는 일/ 몸 사릴 줄/ 모른다//

 

* 필자의 평: 수의 구별은 있으나 많은 부분 시조음보율을 벗어난 변형시조이다.

 

 

(3) 08.9월 (심사위원 : 정수자, 권갑하)

 

<장원>

봄밤 (이자현)

1. 유독// 쓸쓸하게 들리는 말이 있다// // 난 몰라.// 어쩜 좋아.// 참말로// 기가 막혀// // 명치에// 날아와 박힌// 불화살촉/ 뽑는 밤// //

2. 만져보고/ 느껴 보는 것/ 뜻과 같지/ 않아// // 무릅꺾고/ 앉아// 눈물에/ 젖는 밤// // 진실로 // 함께 있는 것.// 무엇인지/ 묻는다// //

 

* 필자의 평: 작자의 말(“정형성은 살리면서도 조금은 자유롭고 싶었다”)과 같이 시조와 자유시의 혼합이다. [전통의 형식 속에 내용의 혁신이 담겨야 한다]고 심사평을 하면서 이런 작품을 시조장원으로 뽑아도 되는가? 이것이 ‘전통의 시조형식’인가? 심사위원들의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놀랄 뿐이다.

 

 

<차상>

하늘, 뜨다 (박은선)

하늘을/ 마주하다/ 그 눈동자/ 담아 냈다// 깊숙이/ 하늘의 색/ 물속으로/ 배어난다// 우물 밖/ 어둔 저녁이/ 물비늘을/ 흔든다// // 달그림자/ 넘쳐흘러/ 물든 빛/ 그리우면// 작은 별/ 울음소리/ 가슴 한 편/ 밀어 넣고//물결이/ 잔잔히 흘러/ 숨소리가/ 들뜬다//

 

* 필자의 평: 한 음보도 어긋남이 없는 정격시조이다. 시조의 자격을 잃은 장원작보다 형식과 내용이 잘 갖추어져 있는 이 작품이 장원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하>

스팸메일(김술곤)

이탈한/ 궤도 한켠/ 숨어든/ IT허상// 지우고/ 쫒아내도/ 달려드는/ 스펨메일// 밤낮을/ 모기떼 되어/ 귓바퀴에/ 앵앵댄다// // 액정 속/ 숨은 얼굴/ 함정을/ 파놓고서// 사탕 줄까/ 소태 줄까/ 꼬셔대는/ 대출상담// 던져 둔/ 미끼 속에는/ 낚시 바늘/ 노려본다// // 무지개/ 쫒는 망상/ 카드를/ 집어 든다// 익명의/ 그림자와/ 눈금을/ 좁혀가며// 만화경/ 요술상자를/ 안고 사는/ 날들이다// // 내 안에/ 꿈틀대던/ 웃자란/ 욕망들을// 벼린 날(刃)/ 시신경이/ 오류를/ 차단할 때// 파란불/ 버튼 하나는/ 껌벅이고/ 있었다// //

 

* 필자의 평: 4수의 긴 연시조이지만 한 음보도 어긋남이 없는 정격시조이다.

 

 

 

4. 잘못된 시조평들

 

시조가 시가의 중심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장르해체의 위기까지 오게 된 원인중 하나가 시조비평계의 안이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시조평자나 심사위원들조차 시조의 특성을 무시한 채 [시조장르를 훼손한 작품을 여과 없이 호평하거나, 등단시키거나, 시상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이봉수 <새시대시조> 07겨울호P69).

 

잘못된 시조평의 실례를 든다.

 

 

(1)월간문학 08.9월호 월평 [시조단이 풀어야할 과제](김연동)

 

[기성문인의 작품이라면 아무 제약 없이 게재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되돌아보아야 할 일](P320)이라고 해 놓고 8월호에 게재된 위 [비양도 물길](윤금초)을 호평하고 있다.

[원숙한 경지에 오른 시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고 하며,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물질하며...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술에 대하여 [독자의 가슴에 깊숙이 가라앉고 있어 그 무게를 느끼게 한다]고 과대평가 하였다.

시조형식이 거의 파괴된 사이비시조임을 발견하지 못하고, 주를 주렁주렁 달아 사투리사전과 비슷한 시를 최고수준의 시조작품인 양, 기성문인의 작품이라고 ‘아무 제약 없이’ 호평하고 있다.

 

 

(2)시조문학 08 가을호 계간평 [삶 속에 무르익어서 풍겨 나오는 감동(感動)](박영교)

 

여름호에 게재된 [홀씨의 바람](양점숙)은 [3.4조 기본율격을 벗어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변형시조](이봉수 <새시대시조> 08가을호 P142)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시조의 형식이 잘 갖추어 졌는지, 문학적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는 평하지 않고, 단순히 작품의 내용을 풀이하고 평자 자신의 인생관을 피력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시는 작자가 [완강한 씨 내림에 밀린 그 봄의 꽃샘바람](둘째 수 종장)이라고 하여 ‘꽃샘바람의 실패담’ 즉 ‘홀씨의 성공담’임을 분명히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계간평은 정반대로 [홀씨의 씨앗들이.....완강한 씨 내림을 원했으나 봄 꽃샘바람으로 인한 밀림을 노래한 작품이다]고 하여 이 작품을 ‘홀씨의 실패담’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였다.

다른 작품에 대한 평들도 대부분 시조의 정형과 문학성에 대한 언급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