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소개
『초혼제』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장시집. ‘첫째거리―축원마당’에서 시작해 ‘본풀이마당’과 지리산과 구월산의 ‘해원마당’에 이어 광주의 ‘진혼마당’을 거쳐 ‘대동·통일마당’으로 이어지는 마당굿판의 실제 공연을 위해 씌어진 이 장시에는 여성·인간해방의 큰 길이 노래되고 있다.
첫째거리-축원마다
여자 해방염원 반만년
1. 사람의 본이 어디인고 하니
어머니여
마음이 어질기가 황하 같고
그 마음 넓기가 우주천체 같고
그 기품 높이가 천상천하 같은
어머니여
사람의 본이 어디인고 하니
인간세계 본은 어머니의 자궁이요
살고 죽는 뜻은
팔만사천 사바세계
어머니 품어주신 사랑을 나눔이라
그 품이 어떤 품이던가
산 넘어 산이요 강 건너 강인 세월
홍수 같은 피땀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조석으로 이어지는 피눈물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열 손가락 앞앞이 걸리 자녀
들쭉날쭉 오랑방탕 인지상정 거스르는
오만불손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문전옥답 뼈빠지게 일구시느라
밥인지 국인지 절절끓는 모진 세월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거두신 것 가진 것 다 탕진하는
오만방자 거드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밤인가 낮이런가 칠흑 깜깜절벽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세월
인생무상 희생봉사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하늘이 높아 알리
땅이 깊어 알리
2. 이 신발을 살아생전 다시 신을까 말까
어머니여 어머니여 어머니여
업이야 복덩이야 여식 하나 낳으실 제
댓돌 위에 흰고무신 나란히 벗어놓고
하늘 한 번 쳐다보며 혼자서 하는 말
이 신발을 살아생전 다시 신을까 말까
저녁 밥상머리 애지중지 살가운 얼굴
살아생전 다시 마주할까 말까
쿵쿵대는 가슴으로 문지방을 넘으시던
어머니여
돌저귀에 매인 광목띠 부여잡고
혼신의 힘으로 고함치던 어머니여
몸조리가 무엇이며 오복이 무엇이던가
애기 낳고 이레 만에 들밭에 나서실 제
인중이 뻐긋하고 온몸이 허전하고
육천 마디 뼈끝에 찬바람 숭숭 불어
세상이 노오랗고 산천이 무심하다
이제 여자 팔자런가 저게 여자 죄업인가
목숨 부지 하세월에
서리서리 꽂힌 벼락
물벼락에 날벼락
일벼락에 희생벼락
청천벼락 난리벼락 전쟁벼락 강간벼락
온갖 벼락 다 맞고서 적막광산 넘어갈 제
고독이 무엇이며 외로움이 무엇인고
여필종부 삼종지도 삼강오륜 부창부수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묵묵부답 기다림 이골이 난 어머니여
3. 말뚝이면 뽑아주고 빗장이면 벗겨주고
해동국 조선땅 팔만사천 사바세계
백년 만에 한번 오는
쌍팔년 가을 시월 상달 택하야
한반도 딸들이 다 모였기로서니
오늘날은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 모두 대한조선 이어갈 주인인지라
말뚝이면 뽑아주고
빗장이면 벗겨주고
쓰러졌으면 일으켜주고
눌렸으면 펴주고
매였으면 풀어주고
사슬이면 끊어주고
우리 모두 자녀 만대 한몸 이룰 사람인지라
민족 절반 여성해방 발원축수 드립니다
상탕에 머리 감고
중탕에 손발 씻고
하탕에 한 풀고
황하에 넋을 씻어
지성 정성 가라앉힌 정화수 한 사발에
한반도 여성해방 일심으로 어룹니다
지구촌 여성해방 합심으로 이룹니다
이 정성을 받으시면
저 정성을 품으시는 어머니여
이 아픔을 받으시면
저 아픔을 품으시는 어머니여
북녘땅 산과 들에 잠드신 어머니
남녘땅 만 가람에 그득하신 어머니
딸들아 어서가자 훨훨 달려오실 제
이 정성을 바치려고 얼마나 기다렸던가
밤이면 새우잠에 낮이면 종종걸음
남성우월 여성하대 당연지사 여기면서
이제나 저제나
긴긴 세월 따질 날만 손꼽아 기다렸는지라
어머니 공덕 빌어 여성해방 어룹니다
4. 보름달 같은 여성해방 이윽히 받으소서
어머니 공덕이 어떤 공덕이던가
지붕이 생기고 가솔 잇는 그날부터
시하층층 손발 되고
시하층층 시집살이
젊은 남편 침모 되고
늙은 남편 노리개 되어
장자 아들 밥이 되고
손자 중손 떡이 되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오장육부 쓸개꺼정 녹아내린 어머니여
생각사록 눈물나고
새길수록 쓰라린 세월
훌훌이 털어내고
우리 정성 받으소서
오늘날 한날 한시 기립한 딸들
바라보면 오지고 돌아보면 장한 딸들
늠름하고 씩씩한 이 모습 저 모습에
맺힌 한 풀으시고 쌓인 설움 씻으소서
이 정성을 받으시고
저 정성을 품으사
보름달 같은 여성해방 이윽히 받으소서
역력히 와 계셔서 저으기 받으소서
동산에 꽃이 피고 만물이 소생하듯
산천초목 화답하고 삼라가 춤을 추듯
치마폭에 담은 한 훨훨 털어버리시고
일평생 받은 고통 단숨에 씻으소서
되로 주면 말로 받고
말로 주면 섬으로 받는 우리 딸들
든든하고 믿음직한 우리 딸들
한반도 여성해방 임심으로 이룹니다
지구촌 여성해방 합심으로 이룹니다
원통히 생각 설리 생각 말으시고
앞앞이 복돋으사
한뜻 이뤄주사이다
2007.12.28/새벽 12시 28분
출판사 창비시선 고정희 저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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