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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 / 창녀를 산 시인 - 구상의 '초토의 시 7'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9. 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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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 / 창녀를 산 시인 - 구상의 '초토의 시 7'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 / 창녀를 산 시인 - 구상의 '초토의 시 7'

 

초토(焦土)의 시 7

구상 

 

시인과 창녀는 굴을 나선다.
장맛비 기화로 시인이 산책을 제안했던 것이다

아침 다섯 시. 억수빗발에 행길은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아 우리를 다행케 했지만 발목까지 적시는 흙탕물 속을 가야만 했다. 
―아메요 후레 후레, 나야미오 나가스마데, 
무심중 중얼거리며 시인은 향방이 없다. 
―어디로 가지? 
―몰라요!
너,
나,
전쟁, 
조국,
인생,
우리는 모두 너무나 모른다. 

무턱 가다 언덕길에 올라선다. 
교회당, 성모상이 흐느끼고 있다.
베르렌느의 고죄(告罪) 광경이 떠오른다. 

―이제는 그만 돌아가지?
―네, 또 오세요. 
우리는 간밤 한자리 꿈의 미련도 없이 갈린다. 

시인은 창녀의 처량한 뒷모습을 바래며 저렇듯 신비가 감싸여 있음에 놀란다.   
종루에 갇힌 비둘기들이 영혼의 신음소리를 낸다.  

—『焦土의 詩』(청구출판사, 1956)

 

<해설>

시인이 창녀와 잤다고 고백한 내용이라 흡사 고해성사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구상 시인은 한국전쟁 당시 대구 ‘자갈마당’에서 직접 겪은 일을 갖고 시를 썼다. 때는 장마철이다. 하룻밤 같이 지낸 여인을 그 마당에서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고는 그녀를 배웅해주기까지의 짧은 여정이 시가 되었다. 

산책을 나오긴 했지만 길은 온통 흙탕물이고 어디로 갈지 몰라 무작정 걷는다. 무심중에 부르는 노래는 일본 가수 미소라 히바리가 부른 노래 <아메노 브루스>의 한 소절로 ‘비야 내려라 내려라, 내 괴로움을 씻어 내리기까지’라는 뜻이다. 랭보에게 총을 쏘아 옥살이를 2년 했던 프랑스 시인 베를렌도 생각해보고 전쟁 중인 조국의 운명도 생각해보는데 현실의 자신은 하룻밤을 같이 지낸 여인과 산책중이다. 떠나온 고향과 생이별한 부모형제와 자신의 처지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걷다가 두 사람은 교회당 성모상을 보는데, 비를 맞고 있는 성모상을 보고 시인은 성모 마리아가 이 지상의 온갖 악 때문에 흐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죄악과 용서, 고통과 구원이 미묘하게 엇갈린다. 시인은 여인의 처량한 뒷모습을 보고는 묘한 신비감을 느낀다. “종루에 갇힌 비둘기들이 영혼의 신음소리를 내”는 대단히 상징적인 장면도 상상해본다. 

구상은 천주교 시인인데 기독교정신과 휴머니즘의 합일을 꾀하고 있다. 기독교정신이나 휴머니즘은 인간에 대한 연민에 기초하고 있기에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 도덕군자를 자처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내일 5월 2일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세미나실에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문학제를 갖는데 11시에 이영광 시인이 구상론을 발표하고 내가 토론자로 나선다. 

출처 : 뉴스페이퍼(http://www.news-pap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