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얼룩 /김정숙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2. 25. 15:57
728x90

얼룩

 

김정숙

 


도반의 상갓집에서 어느 시인을 만났다

검은 빛이 선명하여
윤기 흐르는 양복들의 숲에서
그는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평소 입는 허름한 옷차림
앞섶엔 얼룩까지 묻어 있었다

얼룩도 시가 될까요,묻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라면, 하고 운을 뗀다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먹물을 덮어 쓰지 말 것
처음 만진 옷감에 새물을 들이지 말 것
그는 상갓집 구석 자리에 둥지를 틀고
맹물을 소주잔에 따르더니
자식이기라도 한 듯
얼룩을 연신 쓰다듬는다

시 쓰는 재미로 일생을 우려 먹은 그가
어디선가 튕겨 온 골똘함을 모신 채
벽에 기대었다
*막막한 여백이 조금씩 움찔움찔 물러나고 있었다*


*부분: 문인수 시인의 『벽화』에서 빌려 옴

 

 

―계간『詩하늘 102』(2021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