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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
김정숙
도반의 상갓집에서 어느 시인을 만났다
검은 빛이 선명하여
윤기 흐르는 양복들의 숲에서
그는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올렸다
이십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평소 입는 허름한 옷차림
앞섶엔 얼룩까지 묻어 있었다
얼룩도 시가 될까요,묻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라면, 하고 운을 뗀다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먹물을 덮어 쓰지 말 것
처음 만진 옷감에 새물을 들이지 말 것
그는 상갓집 구석 자리에 둥지를 틀고
맹물을 소주잔에 따르더니
자식이기라도 한 듯
얼룩을 연신 쓰다듬는다
시 쓰는 재미로 일생을 우려 먹은 그가
어디선가 튕겨 온 골똘함을 모신 채
벽에 기대었다
*막막한 여백이 조금씩 움찔움찔 물러나고 있었다*
*부분: 문인수 시인의 『벽화』에서 빌려 옴
―계간『詩하늘 102』(202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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