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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놈
서수찬
내 어릴 때는
몸은 좁쌀만 하게 작았지만
큰 고기만 잡던 아버지 그물에
매번 걸렸다
아버지는 큰 놈들만 궤짝에 담으면서도
자식도 늘 큰 놈이라
속에 두고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가 노상 말씀하시길
물고기만 팔뚝만 한 것을 잡으면 뭐 한다냐
몸만 어른이 되면 뭐한다냐
식구들 입만 생각하면
잔챙이 한 마리 놓치지 않으려고
그물코가 점점 촘촘해지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놓친 셈이
더욱 아까워지니
어부 일을 그만 둘 때가 되었나보다
너는 커서
부디 세상만큼 뚫린 그물에도 걸리는
큰 놈이 되거라
그물은 어느 경우라도 오므리지 마라
그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문이다
―시집『버스 기사 S시인의 운행일지』(시인동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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