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우리말·문학자료>/모음 시♠비교 시♠같은 제목 시 784

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손택수-시어(詩語) 가게에서/최승호

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손택수 구름 5% 먼지 3.5% 나무 20% 논 10% 강 10% 새 5%바람 8% 나비 2.55% 먼지 1% 돌 15% 노을 1.99% 낮잠 11% 달 2% (여기에 끼지 못한 당나귀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함) (아차, 지렁이도 있음) 제게도 저작권을 묻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작가의 저작권은 물론이고 출판사의..

꼴림에 대하여/함순례-꼴린다/이봉환

꼴림에 대하여/함순례 개구리 울음소리 와글와글 여름밤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내가 꼴린다는 말을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빈 하늘에 기러기를 ..

드라이플라워/문인수-마른 꽃/이선영-드라이플라워/고진하-드라이플라워/장요원

드라이플라워 문인수 마음 옮긴 애인은 빛깔만 남는다. 말린 장미, 안개꽃 한 바구니가 전화기 옆에 놓여 있다. 오래, 기별 없다. 너는 이제 내게 젖지 않아서 손 뻗어 건드리면 바스라지는 허물, 먼지 같은 시간들, 가고 없는 향기가 자욱하게 눈앞을 가릴 때 찔린다. 이 뾰족한 가시는 딱..

팬티와 빤쓰/손현숙-단풍나무 빤스/손택수 외 김경주 1편

팬티와 빤쓰 손현숙 외출을 할 때는 뱀이 허물을 벗듯 우선 빤쓰부터 벗어야 한다 고무줄이 약간 늘어나 불편하지만, 편안하지만, 그래서 빤쓰지만 땡땡이 물무늬 빤쓰 집구석용 푸르댕댕 빤쓰는 벗어버리고 레이스팬티로 갈아입어야 한다 앙증맞고 맛있는 꽃무늬팬티 두 다리에..

거미와 달/권혁수-거미/박성우-늙은 거미/박제영

거미와 달/권혁수 듣자니, 거미란 놈이 거리의 나뭇가지에다 미니홈페이지를 개설했다는군요 손님을 기다리시는 모양인데 하루 종일 푸른 하늘을 배경화면으로 깔고 구름과 시원한 비바람을 실시간으로 서비스해도 파리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네요 아무래도 수억 광년 떨어져 있는 별이나 ..

순장(殉葬)/최재영-순장/안효희

순장(殉葬)/최재영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유골은 아직 신원미상이다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한쪽으로 돌아누운 체념뿐이다 슬픔이나 분노는 불경한 것이므로 매장할 수 없다 숱하게 이승을 열고 닫던 시신의 안구는 텅 비어 완전하게 썩은 복종이 퀭하게 뚫린 구멍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무덤 속에..

시 비빔밥/김금용-비빔밥/이대흠

시 비빔밥/김금용 프라이팬에 물 한 잔 놓고 점심을 먹는다 창틈으로 비껴드는 바람밖엔 숨 쉬고 재잘거리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모두가 죽은 오후 세 시 반에 이승훈시인의 비빔밥 시론을 베껴 먹는다 전기압력밥통에서 식혜가 되어가는 잡곡밥과 기제사에서 쓰고 남은 나물들 된장국물과 김치 조금 섞어 비비다가 마른 김 몇 장과 볶은 깨, 참기름 약간 두르면 비행기 기내음식으로 외국인도 환영한다는 문지방 사라진 웰빙 음식이 탄생한다 클래식과 뽕짝의 경계를 허물고 시와 산문, 그림과 사진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사랑을 구하는 나이와 국경, 性의 구분까지 허물고 오직 눈빛 하나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열망 하나로 이념도 목적도 필요 없어진 문지방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정해진 요리법이며 트릭도 맛내기도 필요 없는 나만의..

신발論/ 마경덕(신춘문예 당선작/시집)

&lt;2003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gt; 신발論 마경덕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

낯선 신발과 함께/안오일-신발을 잃다/이재무 외 1편-신발론/마경덕

낯선 신발과 함께/안오일 아무리 찾아봐도 내 신발이 없다 식당 안, 남아 있는 누군가의 신발 한 켤레 가만히 발 집어넣어 보는데 남모를 생이 기록된 이 신발은 도통 낯설다 몇 걸음 걸어보지만 모양도 크기도 다른 시간 자꾸만 벗겨져 헛발을 짚는다 오랫동안 잊고 살던 내 발의 생김새와 버릇이 떠..

화려한 반란/안오일-냉장고/이재무-냉장고 사내/이진

화려한 반란/안오일 닦아내도 자꾸만 물 흘리는 그녀 헐거워진 생이 요실금을 앓고 있다 짐짓 모른 체 방치했던 시난고난 푸념들 모종의 반란을 모의하는가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 심상치 않다, 자꾸만 엇박자를 내는 그녀의 몸,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하고 있다 뜨겁게 열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