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나뭇잎 편지 /복효근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0. 12. 2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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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편지

 

복효근

 

 

누가 보낸 엽서인가

떨어져 내 앞에 놓인 나뭇잎

어느 하늘 먼 나라의 소식

누구라도 읽으라고 봉인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펼쳐놓은 한 뼘 면적 위에

얼마나 깊은 사연이기에

그 변두리를 가늠할 수 없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이렇게

발음할 수 없다는 듯

가장 깊은 사랑은

다만 침묵으로만 돌려줄 수 있다는 듯

글자는 하나도 없어

보낸 이의 숨결처럼 실핏줄만 새겨져 있어

아무렇게나 읽을 수는 없겠다

누구의 경전인가

종이 한 장의 두께 속에서도

떫은 시간들은 발효되고 죄의 살들이 육탈하여

소멸조차 이렇게 향기로운가

소인 대신 신의 지문이 가득 찍힌 이 엽서는

보내온 그이를 찾아가는 지도인지도 모른다

언젠간 나도 이 모습으로 가야하겠다

 

 

 

ㅡ시집 마늘촛불 (애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