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흑산도 홍어 /이재무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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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홍어
이재무
목포에 가면 흑산도 산 홍어를 먹을 수 있지
묵은 김장 김치 한 장 넓게 펴서
푹 삶은 돼지고기에다가 거름더미에 삭힌
홍어 한 점 얹혀 한 입 크게 삼켜
소가 여물을 먹듯 우적우적 씹다 보면
생활에 막힌 코가 뻥, 뚫리면서
머릿속 하얗게 비워진다네
빈속 싸하게 저릿저릿 적셔 가며
주거니 받거니 탁 배기 한 순배
돌리다 보면 절로 입에서 남도 창 한 자락
흘러나와 앉은 자리 흥을 더욱 돋기도 하지만
까닭 없이 목은 꽉 메면서 매캐한 설움
굴뚝 빠져나오는 연기처럼
폴폴 새어나와 콧잔등 얼큰, 시큰하게도 하지
사투리가 구성진 늙은 여자 허리에 끼고
소갈머리 없는 기둥서방으로 퍼질러 앉아
잠시 잠깐 그렇게 세월을 잊고
농익은 관능 삼키다 보면 시뻘겋게 독 오른
생의 모가지쯤이야 한숨 죽여 삭힐 수 있지
―시집『경쾌한 유랑』(문학과지성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