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새라는 이름 /고경자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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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는 이름
고경자
새들이 내려옵니다
바닥에 기대어 사는 날이 많아지고
두 개였던 날개가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어깨가 됩니다
오늘은 내일보다 더 행복할 것 같아
지나쳐 온 것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세상을 향한 첫 계단에 올라서면
눈꺼풀로 세상을 품듯
어둠 속에 잠들어있던 날개가
중생대 화석처럼 굳어갑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도
돌아갈 길은 언제나 저 문밖에 있습니다
세상의 문들이 가리키는 방향,
하늘과 바닥 중간쯤 되는 상상의 공간
그곳에 당신이 계십니다
눈물로 쓰인 기록들이 돌이 됩니다 그 시간에
몇 겹의 지층들이 쌓여야 당신을 알 수 있을까요
무심코 지나쳐 간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로 명명될까요
새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떨어지는 저녁에는
당신도 내 품으로 돌아오는 걸까요
아니면 둥지를 떠난 철새처럼
그 계절을 기다려야 하나요
어쩌면 새라는 이름에는
당신이 없는 약속이 있나 봅니다
―시집『사랑의 또 다른 이름』(시산맥,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