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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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

 

이청우

 

 

종이 비행기

푸른 창공을 날아오르는 오후 3시

길어야 수년, 명을 받고 태어난

그가 납작하게 누워 있다.

수많은 손과 공정을 거쳐

누가 봐도 한눈에 척 알아보는

산뜻한 신분으로 도색을 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에

범접할 수 없는 파.손.주.의

상위 일 프로 대접받으면서

세상은 우리로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고

진열장에서 각을 세우더니

길바닥에 구겨져 뒹굴고 있다.

본디, 내려다보면 세상은 보이지 않고

가장 정갈한 윗부분만 보이는 것일까

행인들은 붉은 경고문을 무시하고

그의 남루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우주의 점 하나로 떠나는 그가

무위의 바람이 동무가 될까

바람이 그의 몸을 가만가만 흔든다.

 

 

 

⸺계간『詩하늘/통권 100호 특집』(202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