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폐타이어 /배두순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1. 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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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타이어
배두순
저물녘의 어정쩡한 시간을 베고
바람 빠진 몸을 동그랗게 누이고 있다
푹 꺼진 아랫배의 공복을 채울 생각도 없이
쌩쌩하게 달려가는 것들을 무연히 바라보고 있다
끈질기게 따라붙던 검은 혓바닥의 공포에서 풀려난
해방의 자유가 저처럼 과묵하다
이제 다시는 굴러다니지 않아도 좋으리라
속도의 하수인, 한때는 맹목의 사랑을 위해 달렸으며
낯선 곳에서의 달콤한 일탈도 맛보았다
거부할 수 없는 야합에 끌려
막다른 골목 끝까지 네 발로 기어간 적도 있다
이제 무제한의 속도를 낭비한 소명을 받아내려 한다
뇌리의 안쪽까지 흘러든 폐유 같은 여정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동해 서해 남해 이산 저산을 섭렵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 지난날들을 점검하려 한다
낮달처럼 떠오르는 희미한 희망을 보며
미미한 미련에 목을 매는 습관 때문일까
때가 되면 봄바람은 다시 불어올 것이고
마음 언저리에 방치한
몇 개의 풀씨도 출세의 날을 기다릴 것이다
이쯤에서 무분별했던 내 과속의 오류들을 덮으려한다
폐타이어는 입이 무겁다
*대중가요 인용
―시집 『황금송아지』(한강,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