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보라의 방식 /전순영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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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의 방식
전순영
머리에서 발끝에서
우아하고 그윽한 꽃잎이 나비처럼 멀리 더 멀리 날아갈 때
흙도 강물도 물들어
꽃으로 피어났다
정원으로 꽃구경을 가겠노라
임금의 말이 떨어지자
화들짝 놀란 꽃들은 겉옷 속옷 갈아입고 단장을 하고
꽃망울을 터뜨렸다
치렁치렁한 비단결 머리
불을 내뿜는 비취를 부끄럽게 하던 눈동자를 휴지처럼
뽑아 던지던 날
꼬리가 어디까지 따라 왔던가
아무 때나
이불속 야식으로 차려지는 수레바퀴를 던져버린
모란은 뿌리째 쭉 뽑혀
바람에 날려서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지난날 연분홍 꽃구름 아슴아슴 피어오르던
불꽃으로 타올랐던 가슴속 얼기설기 얽힌 그 한때를
흙속에서 두레박줄을 끌어올려 풀어놓고
밟히면 밟힐수록
분홍 빨강 보라가 가슴을 뚫고 모락모락 피어올라 지금도
입술을 깨물어 피 먹음은 진보라
―웹진『시인광장』(2021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