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엄마는 부재중​ /노수옥​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1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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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부재중

 

​  노수옥

 

  남편이 다섯이나 있어도 늘 목 말라하던 엄마는 우물가로 물 길러 나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거부하고 싶은 유전자가 내 몸 구석구석을 돌고 있어요

  엄마의 빈자리에 암고양이 같은 여자가 들어 왔어요 여자는 번번이 내 존재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요 폐지처럼 구겨진 나를 펴기도 전에 아빠의 편파적인 판정이 나를 짓밟아요

  나는 재활용이 가능할까요?

  고양이科인 여자 목소리엔 날카로운 발톱이 달렸어요 아빠는 웃음소리로 발톱자국을 숨기죠 숨어있는 발톱은 나를 보면 튀어나와요

  더 구겨지고 찢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죠

  그날 밤, 꿈에 기억조차 희미한 생물학적 엄마를 만났어요 온몸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한기로 잠이 깼을 때 인터넷 엄마를 불렀어요 검지로 손짓하니 단숨에 달려와 다정히 손을 잡고 자살 사이트까지 데려다 주었죠

  그녀는 나를 책임지지 않아요

  지금 내게 한명의 엄마도 없어요

 

 

―시집『기억에도 이끼가 낀다』(시와표현,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