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시를 읽어야 할 시간

매미 허물 /김신용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1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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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허물

 

김신용

 

 

놀라워라, 저토록 정교한 생명 주조의 틀이라니! 거푸집이라니!

 

풀잎에 매미가 벗어둔 허물이 자신도 하나의 생명체인 듯 붙어 있다

 

자신의 몸속에 담고 있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붙어 있다

 

그래, 세상의 어떤 허물이 제 몸을 빠져나간 것과 저리 닮은꼴일 수 있는지

 

저 허물이 한때 생명체를 담았던 틀이 아니라 거푸집이 아니라

 

이 지구상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 그 자체라는 듯 풀잎에 붙어 있다

 

몸속에 자신과 똑같은 또 하나의 자신을 담기 위해 오랜 세월

 

땅 밑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겹게 구축했을, 또 하나의 생의 주형틀.

 

그렇게 새로운 생을 살아 갈 생명과 하나의 것인, 이 껍질의 생.

 

그 생이 부르는 노래를 위해, 노래의 유전자를 잉태하기 위해

 

정교하게 축조된 주형틀에 그렇게 우화(羽化)의 생을 담았던, 저 매미 허물.

 

이제 자신은 허물로 남겨두고, 새로운 세계에서 새롭게 살아 갈

 

또 하나의 자신을 땀 흘려 건축하고, 이제 텅 빈 껍질만 남았으면서도

 

놀라워라, 그것도 하나의 생명체인 듯 완강하게 숲의 풀잎에 붙어 있다

 

 

 

계간백조(2020년 겨울호(4호 복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