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감상해 보자
홍성란 -어린 봄/바람의 머리카락/들길 따라서/슬픔이 슬픔에게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1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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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봄
홍성란
새는 어디서 오는 걸까
버들강아지 낮은 물가
붉은머리오목눈이 쓰다듬는 눈을 하고
물 건너
보기만 보네 하느님도 꼼짝없이
바람의 머리카락
대추 꽃만 한 거미와 들길을 내내 걸었네
잡은 것이 없어 매인 것도 없다는 듯
날개도 없이 허공을 나는 거미 한 마리
가고 싶은 데 가는지 가기로 한 데 가는지
배낭 멘 사람 따윈 안중에 없다는 듯
바람도 없는 빈 하늘을 바람 가듯 날아가데
날개 없는 거미의 날개는 무엇이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다는 듯
매나니 거칠 것 없이 훌훌, 혈혈단신 떠나네
들길 따라서
발길 삐끗, 놓치고 닿는
마음의 벼랑처럼
세상엔 문득 낭떠러지가 숨어 있어
나는 또
얼마나 캄캄한 절벽이었을까, 너에게
슬픔이 슬픔에게
알아 너 그렇다는 것
알아, 알지만
알지만 아는 척 할 수 없어 미안해
세상에 없던 일만 못한 일도 있다는 것
알잖아
ㅡ제1회 조운문학상 수상 기념 시집 『바람의 머리카락』(고요아침,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