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감상해 보자

홍성란 -어린 봄/바람의 머리카락/들길 따라서/슬픔이 슬픔에게

흐르는 물(강북수유리) 2021. 2. 15. 13:46
728x90

어린 봄

 

홍성란

 

 

새는 어디서 오는 걸까

버들강아지 낮은 물가

 

붉은머리오목눈이 쓰다듬는 눈을 하고

 

물 건너

보기만 보네 하느님도 꼼짝없이

 

 

 

바람의 머리카락

 

 

 

대추 꽃만 한 거미와 들길을 내내 걸었네

 

잡은 것이 없어 매인 것도 없다는 듯

 

날개도 없이 허공을 나는 거미 한 마리

 

가고 싶은 데 가는지 가기로 한 데 가는지

 

배낭 멘 사람 따윈 안중에 없다는 듯

 

바람도 없는 빈 하늘을 바람 가듯 날아가데

 

날개 없는 거미의 날개는 무엇이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다는 듯

 

매나니 거칠 것 없이 훌훌, 혈혈단신 떠나네

 

 

 

 

들길 따라서

 

 

 

발길 삐끗, 놓치고 닿는

마음의 벼랑처럼

 

세상엔 문득 낭떠러지가 숨어 있어

 

나는 또

얼마나 캄캄한 절벽이었을까, 너에게

 

 

 

 

슬픔이 슬픔에게

 

 

 

알아 너 그렇다는 것

알아, 알지만

 

알지만 아는 척 할 수 없어 미안해

 

세상에 없던 일만 못한 일도 있다는 것

알잖아

 

 

ㅡ제1회 조운문학상 수상 기념 시집 『바람의 머리카락』(고요아침, 2016)